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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일청년 캠프·「조선통신사의 길」을 다녀와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일 국교정상화 20년-. 바로 20년전 한일회담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난 젊은 대학생 36명이 지난달 24일 부산을 떠나 「조선통선사의 길」을 따라 일본속의 「한국사의 길」을 돌아보고 4일 귀국했다. 우리 젊은이들은 10박11일간의 이 「한일문화비교연구청년캠프」 (유네 스코한국위원회주최)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지도교수 정연선교수(숭전대·정치외교학)와 학생 이경희양 (성신여대·일문학과 4년)·한문수군 (고려대·경제학과 3년)·박은정양 (연세대·사학과 2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석자>
정연선교수 <숭전대·정치외교학과>
이경희양 <성신여대·일문학과4년>
한문수군 <고려대·경제학과3년>
박은정양 <연세대·사학과 2년>
▲정연선교수=이번 「한일문화비교연구 청년캠프」는 다섯번째로 특히 양국의 국교정상화 20주년을 맞아 그 일정을 수백년전 일본에 대륙고급문화의 젖줄 역할을 한 조선통신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부산∼시모노세끼∼하기∼야마구찌∼히까리∼히로시마∼오오사까∼나라∼교오또∼도오꾜∼쓰꾸바등의 여정이었습니다.
▲한문수군=「한일관계의 새로운 1백년을 향하여」를 주제로 하는 이번 행사동안 오른쪽 가슴에 태극마크가 선명한 이름표를 달고 배낭을 맨채 가까운 거리는 도보행군도 했읍니다.
▲이경희양=지난달 24일하오5시 부산에서 일본배인 관부페리호를 타고 시모노세끼로 향했습니다. 곧바로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 셈이지요.
▲박은정양=떠나기전에 일본에 관한 참고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책에서 본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그들은 공공시설을 잘 가꾸어 놓았더군요. 박물관·공원등은 그 규모도 놀라왔지만 내부시설 또한 더욱 잘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동경대에 가보니 캠퍼스의 외형은 우리대학보다 못했지만 실험실이나 도서관은 훌륭했습니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알아서 행하는 사고방식은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정교수=그러길래 우리도 이제 눈을 크게뜨고 세계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지도교수도 이번 일본길이 처음이라 학생들과 똑같은 충격으로 일본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일본을 임진왜란이나 일제36년으로만 연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지난달 25일새벽 시모노세끼에 도착했는데 우선 그 산뜻함에 놀랐습니다. 비록 건물은 낡았지만 깨끗했고, 건물의 얼굴이랄 수 있는 간판이 잘 정돈돼 있어 그런 인상을 준 것 같아요.
▲이=시모노세끼에서 첫 민박을 했는데 주택구조와 생활양식이 반서구화 됐더군요. 전통을 지켜 가면서 편리한 것은 받아들인다는 생각 같았습니다.
▲박=사찰·공원등의 화장실이나 지하도에 이르기까지 신체장애자를 위한 시설이 잘돼 있었습니다.
▲정교수=그러나 아직도 곳곳에서 우리문화의 우월성과 그 실상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한=시모노세끼에서 민박을 했는데 그 집주인이 한국에 대해서 잘 알더군요. 서재의 한쪽벽이 한국에 관한 책으로 차 있고 6∼7세기에 일본이 우리 문화의 많은 것을 받아들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교과서 왜곡에 대해 물으니 정치적 문제라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박=역사학이 전공이라 다까마쓰고분을 자세히 보리라고 큰 기대를 했는데, 발굴작업을 중단한 채 폐쇄해 놓아서 주위만 맴돌다 그냥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고구려의 상영총과 비슷한게 많이 나오니까 발굴을 중지한 게 아닐까요.
▲한=시모노세끼의 한 박물관에서는 그들의 것은 아주 잘 정리해 놓았는데, 우리나라 지도와 광개토대왕비문탁본등이 화장실쪽 구석에 조명장치도 없이 설치돼 있어 사람들이 대부분 그냥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정교수=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것은 아주 정교하게 확대해서 「선전」하면서도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수치스러운 것은 철저하게 은폐하려는 것이지요.
▲이=박물관의 유적 설명도 모두 일본어뿐으로 다른나라 사람들은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명치유신의 태동지인 하기에 가보니 명치유신의 산파였던 「요시다·쇼오인」의 일생을 밀랍인형으로 꾸며놓는 등 영웅화했더군요. 그에 대한 설명도 이상적인 일본인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한=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은 왼쪽으로 희생된 일본인들을 위해 잘 꾸며 놓았더군요. 그러나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탑은 공원밖에 개천을 건너 따로 서 있더군요. 평화공원박물관에는 원폭피해당시의 사진과 유물에 대해 『미국의 핵폭탄에 의해 우리가 이렇게 당했다』고만 설명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박=일본학생들이 우리에게 『한국은 일제36년등 과거에만 너무 집착한다』고 지적하던데요.
▲한=와세다대의 한 학생이 일본의 군사재무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조금 당황했었는데 『내가 한국학생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충고하는데 안하는 게 좋을 것』 이라고 했더니 피식 웃었습니다.
▲정교수=많은 부문에서 이미 그들은 군사적 재무장은 아니지만 정신적 재무장이 철저하게 돼있더군요. 그게 부드럽게 내면화돼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재일교포와의 만남에서 지문날인문제를 물었더니 민족정신과 생활의 불편에 앞서 인권의 문제로 본다고 하더군요.
▲정교수=「히까리」시장을 만났는데 자신은 지문날인제도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하더군요. 오히려 우리 정부에서 외교적으로 좀더 강력하게 대응해 주길 바라던데요. 일본을 떠나기 전에 자유시간이 주어져 그들의 대중문화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보았는지요.
▲한=요즘 한국에도 상륙해 퍼지고 있는 가라오께술집에 가 보았습니다. 젊은이들 한무리와 40대 회사원 한 무리가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마치 퇴폐의 온상처럼 생각되고 있는데 실제로 보니 꽤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장이던데요. 『사랑해』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는데 많은 일본인들이 따라했습니다.
▲정교수=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또 변질돼 그런것 같습니다. 외국문물, 특히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는데는 좀더 비판적 수용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디스코테크에 갔었는데 일본청소년들의 옷차림이나 그 춤이 굉장하더군요. 또 일부청소년들이 슈퍼마킷에 서서 도색만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모든 청소년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청소년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박=저도 민박하는 집의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어릴때부터 자유스럽게 보니까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한=난생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욱 넓게,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양재찬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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