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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과 마음의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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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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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흔히 ‘신경정신과’라고 불리던 분야가 ‘신경과’와 ‘정신과’로 분리되었고, 그중 후자의 명칭이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전남지부 주관 행사의 말석에 끼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문학이라는 것이 여러분들이 하는 일과 꽤 비슷한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하는 악전고투라는 점에서 말이다.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마음이라는 말만 들으면 대뜸 사이비 과학의 냄새부터 맡는 편협한 유물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이 순진한 것도 맞을 것이다. 둘 다 틀렸다면 결국 마음에 대한 연구란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적 조건들에 대한 과학적 탐구이면서 동시에 그것으로 다 환원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여야 한다는 말이다. 소설가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에서처럼 그 성과가 누적되어 선형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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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고뇌하는 인간을 다룬다. 소설가 권여선은 그런 한국 문학의 오늘을 보여준다. [중앙포토]

그런데 인간의 조건과 마음의 현상을 탐구하는 문학자가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갖는 대상은 행복한 인간이 아니라 불행한 인간인 경우가 많다.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s)’, 즉 ‘고뇌하는 인간’ 혹은 ‘고통받는 인간’ 말이다. 병에 걸리고 나서야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과 내 몸의 구조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불행은 비로소 인간을 사유하게 한다. 어떤 분들은 문학이란 늘 이렇게 심각하고 우울해야 하느냐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문학이 지금 사유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한국에서 ‘순(수)문학’이니 ‘본격문학’이니 하는 미심쩍은 용어(이런 유형의 작품을 옹호하는 평론가들도 이 용어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는다)로 분류되는 많은 작품이 (그 성취는 다 달라도) 그런 사유의 소산이다. 프랑스에서 세계적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생의 이면』과 『지상의 노래』의 작가 이승우나 최근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등이 한국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온 것도 그들이 거시적·미시적 폭력에 상처 입어 아파하고 고뇌하는 ‘호모 파티엔스’의 가장 집요하고 진지한 대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출간된 권여선의 신작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는 오늘날 한국 문학의 호모 파티엔스에 대한 사유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다. 특히 ‘봄밤’과 ‘이모’는 삶에 대한 차가운 지적 통찰과 뜨거운 정서적 감응이 소설에서 서로를 배제하는 미덕이 아님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요즘 한국 문학은 대부분…’으로 시작되는 무분별한 전칭명제가 허망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이렇게 언제나 한국 문학 그 자체다(이 소설집의 끝에 꽤 긴 해설을 이미 붙여놓은 터라 여기서는 그 글에 붙일 만한 또 한편의 서론을 적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