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투자의욕을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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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름철 장마보다 더 지루했던 경기논쟁은 끝났다. 부진한 수출, 감퇴된 고용과 성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긴축정책의 궤도를 수정하여 통화긴축을 완화했다. 6월의 총통화공급은 전년동기보다 12.9%나 증가하였다.
은행에서 돈은 많이 풀려 나가는데 이것이 실물부문에서의 생산 및 투자확대로 파급되지 못하고 풀려난 돈은 금융부문내에서 유통되어 금융자율의 확대만을 가져오고 있다. 실물거래활동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협의의 포화량개념인 M1이 6월현재 전년동기에 비해 4.8% 증가에 그쳤고 전년말보다는 오히려 8.2%나 감소했다. 실물부문에서의 경제활동이 크게 감퇴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금융공급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실물부문에서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업이 의욕과 활력을 상실한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다른 어느 나라 기업보다 왕성한 투자의욕과 활력을 과시해왔던 우리나라 기업이 이와 같이 활력을 잃게 된 것은 해외시장에서 날로 높아지는 수입장벽, 국내시장에서 밀어닥치는 수입자유화바탕 등 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80년대의 안정화정책 추진과정과 무관할 수는 없다.
지나친 통화긴축은 은행의 금융기능을 거의 마비시켜 기업설비투자를 저해하는 가장 큰 애로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여기에 겹쳐 대기업여신규제는 대기업이 갖고 있는 투자기회와 투자능력을 말살시킴으로써 기업의 투자의욕상실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기업의 투자의욕과 활기를 되찾아주기 위한 정책배려와 기업환경조성이 시급히 요구된다. 제조업의 대기업이 공장을 하나 건설하려면 여신규제의 「자구노력」에 걸려 투자계획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어느 호텔경영자가 고급살롱을 새로 건설하는 데에는 이러한 금융상의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업종이 제조업보다 훨씬 낮은 금융코스트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84년 기업경영분석자료에 의하면 차인금평균이자율이 제조업에서는 14.4%인데 대하여 서비스업에서는 10.8%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수익률을 대비해보면 자기자본경상이익율에 있어 제조업이 15.2%인데 대하여 서비스업은 24.7%나 된다. 향락산업이 번창하고 제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원인을 알 수 있겠다. 수익률이 높은 사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것이 시장경제원리다.
안정화정책의 추진, 독과점가격규제 등 다각적인 행정규제 밑에서 기업은 물가안정과 공정거래라는 경제적 사회적 책임을 안고 적정이윤을 추구하는 가격결정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제조업의 투자 생산활동을 속박하는 대기업여신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모든 여신결정은 은행의 자율에 맡겨져야 한다. 특히 여신관리규정 중 소위 「자구노력」의 철폐는 시급하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 적어도 다른 산업의 기업과 같은 정도로 자유롭게 이윤추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정돈상태에 있는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금리는 대폭 인하해야 한다. 안정과 성장의 경제적 측면에서나, 소득분배의 사회적 측면에서나 금리는 낮을수록 바람직하다.
물가는 안정되었고, 그리고 이러한 물가안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며, 한편 경기는 침체국면에 빠져있는데 금리를 높인다는 것은 이론적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산업과 기업의 활력을 꺾는 독소요인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금리자유화를 내세워 금리를 계속 인상하는 금리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공금리를 올려 시장금리에 맞출 것이 아니라 시장금리를 낮추도록 물가안정·소비절약·저축증대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저축증대를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진정한 저축과 금용자산을 혼동한데서 나온 것이다. 고금리는 금융자산 소유자를 살찌게 할뿐 산업자본축적에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진정한 금용 저축은 가계의 소비절약을 의미하며, 이것은 고금리정책보다는 조세유인정책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스럽고 효과적이다.
구석모<한국경제연구원부원장·경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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