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문제를 말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농촌으로 돌아가서 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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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농촌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뒤를 따라 다닌 지가 그렁저렁 30년을 넘어선다.
그런데 사회가 불안하거나 어떤 뚜렷한 이슈가 있어서 격동할 때에는 농활에 참여하는 학생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였다.
4·19, 5·16, 6·3사태, 한·일 회담반대등등 때에는 지원자의 수가 배가되어 전부활동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밀어닥치는 바람에 활동지역 선정과 예산이 마련되지 못해 상급생들에게만 기회를 주였고 그래도 흡수 못한 학생들은 둘씩 짝을 지어 독농가에 입주시켜 그집 딸노릇을 시켰었다.
이렇게 밀어닥친 학생들은 평상시에는 모든 활동에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측이 많았다. 수수하고 사려 깊은 조용한 다수라고 생각되었고 또 농촌을 향하는 마음이 그렇게 진지하고 순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흙 속에서 쓴 많은 일기와 보고서를 남겨놓고 있다.
사회격동기에 참여학생의 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생각하건대 그동안 안온한 생활에 젖었던 혼의 각성작용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혼의 방향이 소외되었던 음지로 잡힌 것이 아니었을까. 그 위에 농촌은 사회의 뿌리라는 잠재의식까지도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나도 뭔가 거들어야 되겠다』『가만히 있을수 만은 없다』『나도 이땅의 젊은이요 주인』이라는 주체로서의 행동이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사실이었고 밀려드는 학생들을 소화하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참으로 뿌듯한 충족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젊은이들의 기요 힘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농촌으로 그들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건강한 정신상태인가. 교육자의 말속에서나마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평상시에는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다. 참여학생이 적을 경우 가끔 설득이나 강권에도 막무가내였었던 것인데 이렇게 파도처럼 밀려든다는 것은 특수한 현상이 아닐수 없다.
나는 지난주 학생들과 같이 충남으로 새 활동지역을 답사하러 갔다. 교회 전도사의 주선으로 이장들은 이해가 잘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현지의 이장들을 만나보니 소극적인 태도였다. 다만 면서기가 어제저녁, 오늘 아침에도 다녀갔다는 대답뿐이었다. 교수가 인솔하고 공문을 보낸다고 하는데도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사실 지금 농촌에 일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8월 초순이라야 호미를 씻는다는 것인데…. 젊은이가 적은 농촌의 일손부족은 보도매체가 늘 외고 있는 사실인데….
더욱 모낼때, 추수 때 도우러갔던 학생들에게는 납득되어질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또 일이란 논밭에서만 아니라 도로·제방보수·다리보수를 위시하여 넘어진 울타리 세우는 것, 어린이·학생 상대의 교육, 우는 아이 업어주는 것도 모두가 일이다.
원래 농활이란 일을 찾아서 나서는 것이 기본 자세다. 지난해 충북으로 3백멱 가까운 학생들과 농활에 참여하였다. 그런 인원으로는 일손이 부족했다. 금년에는 더많이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있는 중이다.
지금 농활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내 생각으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황 때문이 아닐까한다.
지난번 총선결과와 작금의 위기설까지 떠도는 사회 상황 때문이 아닌지….
아뭏든 지난 학기 데모 때에도 별로 움직이지 않던 조용한 다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때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들을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다수의 건전한 의기와 일손이 아쉬운 농민과를 능동적으로 접합시켜 생산을 증대하고, 메말라 가는 인정을 싹트게 하고 도농간의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새참을 주어도 학생들이 받아먹지 않는다고 안타까와하는 농민과 학생들 사이다.
매듭이 있으면 풀어주는 것이 상식인데 혹시나 없던 매듭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또 참여하는 학생들도 진지하고 겸손하며 배우는 태도라야 한다. 농활을 통해 농촌의 여러 문제를 상세히 파악하여 사회에 체계 있게 제시해야 한다.
여기 까지가 학생운동의 한계다. 나아가 농촌문제란 과연 일생을 걸어 볼만한 대상인가도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사실 학생들의 농활은 농민자신들의 주체적 운동이 아닌 농외인의 운동이므로 핵심적 위치에 설 수가 없는 변두리를 맴돌고 있는 운동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를 이어 흙속에서 사는 농민들의 그 절절한 마음일수가 없고 변두리의식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농촌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농민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면 언제나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학사출신 농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부가 되어 농촌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지성바보」들의 출현이 더욱 고대되는 시점이다.
농촌문제를 말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농촌으로 들어오라. 그리고 거기서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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