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남대문 옆 우리집…색연필 잡으니 마음이 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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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오두산 벽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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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댈러스에 거주하는 장은숙씨(73·왼쪽)가 지난 12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아 어릴 적 평양 고향집에 서 있던 큰 느티나무를 색연필로 그렸다. 이런 실향민들의 그림 1만5000점을 모아 대형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꿈에 그린 북녘’ 프로젝트는 통일교육원과 중앙일보 공동 주관으로 8월 15일까지 진행된다. [사진 강정현 기자]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 192명의 ‘국외 이북도민 고국방문단’이 이곳을 찾았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독일·아르헨티나에 흩어져 살던 이들이 이북5도위원회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진정한 ‘귀향’은 기약이 없다. 전망대에 서서 임진강 너머 펼쳐진 고향 땅의 모습을 더듬으며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주 오두산 찾은 국외 실향민 192명
통일전망대서 북녘 땅 고향 그려
“뒷산에 뜬 달 위로 새 떼가 날았지”
수십 년 지나도 또렷이 기억해내

70~80대 고령자가 대부분인 방문단은 이날 고향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하나씩 그렸다. 통일교육원과 중앙일보가 마련한 ‘꿈에 그린 북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황해도 출신의 조옥심(85)씨는 20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그의 고향은 전망대 앞 강 건너편인 황해북도 개풍군이다. 하염없이 북녘 땅을 바라보던 조씨는 “어릴 적 떠나온 동네 어귀를 생각하며 색연필을 잡으니 마음이 떨린다”고 말했다. 20년 전 전망대를 방문했을 땐 옛집의 위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도 아른거리고 북쪽 마을이 바뀌어 도저히 못 찾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미국 댈러스에서 온 평양 출신의 장은숙씨(73)는 산자락에 뜬 달 위로 한 무리 새 떼가 날아가는 고향의 풍경을 펼쳐 냈다. 장씨는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향은 늘 마음속에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분한 느낌의 그림과 달리 장씨는 그림을 다 그린 뒤에도 “괜히 마음이 설렌다”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북녘 고향을 그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받은 고국방문단원들은 처음엔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쳤다. 하나둘 펜을 들기 시작하자 이내 부스가 떠들썩해졌고 제각기 쏟아 낸 고향의 기억으로 가로세로 7.6㎝ 여백이 채워졌다.

개성 출신의 문석희(74)씨는 9세 때 고향을 떠났다. 그런데도 60여 년 전 고향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개성 남대문과 조선은행, 고려여자관 등 과거 번화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문씨는 “우리 집이 개성 남대문 바로 옆에 있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이처럼 절박한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가져갔다. 지난해 10월 상봉행사를 끝으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처음 이산가족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88년부터 올해 4월까지 통일부 등록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838명 중 6만592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비율(50.4%)이 처음으로 생존자를 넘어섰다. 상봉에 성공한 사람은 지난 17년간 4185명(3.1%)에 불과하다. 매년 평균 3000~4000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고 그 추세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방문단에는 실향민 2세·3세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떴거나 건강 문제로 이번 고국방문단에 동행하지 못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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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평양 출신의 이춘화(67)씨는 태어난 지 1년여 만에 부모님 등에 업혀 피란을 내려왔다. 작은 초가집을 정성 들여 그린 이씨는 “베이비(아기) 때 넘어와 직접 눈으로 본 고향의 기억은 없다”면서도 “부모님에게 전해 들은 말을 토대로 고향을 그려 본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 출신 김홍규(사망)씨의 딸 연아(54)씨는 “2세·3세들이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고향을 다시 찾겠다는 마음을 갖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북녘 고향 그림을 완성한 뒤 버스에 오른 이들은 “나의 작품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져 오두산에 영구 전시된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온 봉세빈(68)씨는 “한국에 사는 친·인척들에게 꼭 한 번 들러 고향 모습을 찾아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서재준 기자 suh.jaejo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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