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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부는「변화의 바람」|미 공산권문제연구가 「패리스·장」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공산권문제 전문가인 「패리스·장」(중국계 미국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정치학)겸 동교 아시아문제연구소장은 최근 북한·중공·소련을 방문하고 나서 뉴스위크지에 북한의 실상을 분석하는 특별기고를 했다. 다음은 그 요지다.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새로운 국면의 시기를 맞고있다.
김일성의 40년 장기집권 독재체제의 종말이 보이고있으며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이 이양되고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외국투자를 유인하는 정책과 서방세계와 무역거래를 늘리는 몇 가지 정책을 채택했다.
북한의 유화적인 경향은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통일을 논의하기 위한 한국-미국-북한 3자회담의 제안, 남북적십자회담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북한의 종래 호전적인 강경노선에 전환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상의 것들은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때 받았던 분명한 인상들이다.
김정일은 1980년 김일성의 정치적 후계자로 등장한 이래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을 굳건히 장악하고있다.
북한최고의결기구인 정치국의 국원이자 노동당서기국원인 김정일은 당과 행정부의 일일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김일성의 가까운 친구인 캄보디아의 망명지도자 「시아누크」는 『권력이양의 절차는 이미 끝났다』고 나에게 말했다.
「시아누크」는 김정일이 북한의 경제개방정책과 남북한국회회담의 아이디어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는 지도자로서의 경험과 수완을 충분히 갖췄고 정치적인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있는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는 해외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지난 20년동안 중공에 단한번 다녀온 경험밖에는 없다. 그의 외교적 수완은 아직 미지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김정일이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군대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가 지휘권을 발동할때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군 고위장교들로부터 상당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한편 젊은 엘리트관료들이 부상했다. 50대 중방의 경제학자인 강성산은 지난해 총리에 지명됐다. 83년에는 도시출신인 김영남이 외상자리에 올랐고 그 이후 수개국어에 능통한 새로운 수십명의 젊은 외교관들이 해외에 배치됐다.
평양은 외교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자본주의 국가를 포함해 모든 국가와 경제적·기술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러한 주요정책변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김정일은 『자립의 원칙 위에 독립된 국가경제를 건설하는 것은 반드시 고립된 경제건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된 경제는 외국의 경제지배와 종속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독립 경제는 국제적인 경제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84년9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산업·건설·운수·과학기술, 그리고 관광부문에 대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합영법을 제정했다.
지난 83년6월 중공을 방문한 김정일은 상해근처에 있는 일·중공합작회사인 바오샨철강회사등 여러 공장을 둘러보았다. 84년8월 정무원총리 강성산이 중공을 공식방문 했을때 북한은 중공과 합작투자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북한은 외국자본을 유치하는데 있어서 합영법 제정 이상의 많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서방측의 계속되는 불신과 지난 70년대의 외채상환 불이행으로 외국의 투자가들은 북한과의 거래에 있어 상당기간 조심스럽게 관망자세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대외개방정책을 표방했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북한관리들은 아직 대부분 바깥세계에 대해 무지하지만 그들이 바깥 세상을 겸손하게 배우려고만 한다면 그들은 중공이나 한국처럼 자본주의 세계와 친숙하게될 것이다.
북한의「경제적 기적」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뒷받침할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서구에서는 북한이 공격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언제나 남한을 침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북한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폐쇄적인 북한에 대한 서구인들의 직접적인 지식이 결핍되어 있는 점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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