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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담배 한국 상륙에 미 관민 협공|시장개방압력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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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담배를 한국에 상륙시키려는 미국의 관·민 양면 공세가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있다.
정부차원에서 미국 측은 1일과 2일 워싱턴의 한미 경제협의회를 통해 양담배를 대한 상품시장개방 요구 대상 중 최우선 품목의 하나로 제시했다.
한편 미국의 담배제조판매 회사들도 한국정부를 상대로 맹렬한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다. 「레이건」정부 출범 때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리처드·앨런」이 연초 내한한데 이어 오는 7일에는「마이크·디버」전 백악관 비서실장이 한국을 찾아온다.「디버」는 미국 최대 담배메이커인 필립모리스사를,「앨런」은 랭킹 2위의 레이널즈사를 위해 뛰고있는 인물로 이미 알려져 있다. 정통한 고위외교소식통에 따르면「헨리·키신저」전미 국무장관의 이번 방한도 필립모리스사를 위한 로비활동과 관계가 있다고.
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포레스터」장군이 필립모리스사 고문자격으로 이미 내한한바 있고 필립모리스사의 사장, 부사장은 아예 이번 여름 바캉스 예정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정도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엄호 사격을 배경으로 필립모리스사는 지난 2월부터 정식으로 변호사를 통해 한국정부 당국에 기술제휴 및 합작생산의 단계적 접근방안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레이널즈사는 한진그룹과 접촉, 에이전트계약을 추진중이고, 랭킹 3위의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사는 이미 작년 11월 두산그룹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어 상륙 준비를 진행중이다.
미국이 한국 담배시장에 군침을 흘리는데는 여러가지이유가 있다. 우선 작년에 1천2백억 달러, 금년 1천3백억 달러 돌파가 예상되는 등 만성적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에서 담배는 수출 상품랭킹 3위 품목이다. 수출시장 확대노력은 쉽게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터에 한국은 외제담배의 흡연은 물론, 소지까지도 불법화한 세계 유일의 국가로서 좋은 공략목표로 지목된 것이다. 더구나 작년 2월의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공개적 양담배 단속으로 미국 측에 담배시장 개방압력의 꼬투리를 제공하는 해프닝마저 벌어졌다.
미국 담배업자의 눈으로 볼 때 한국은 물실의 호시장이 아닐 수 없다.
작년의 경우 무려 7백63억 개비, 1조3천9백18억원 어치의 담배가 팔렸고 금년 전매청의 판매목표가 7백64억 개비, 1조4천1백15억원(18억 달러)으로 담배시장 규모는 세계13위에 올라있다. 특히 한국의 흡연자는 주한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양담배로 입맛이 길들여져 이미 수용태세가 갖춰져 있는데다가 흡연 기호가 순한 담배쪽으로 변하고있어 양담배 진출 조건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 입장에서 보면 언젠가는 불가피할 담배시장 개방에 관해 선뜻 결심을 못하는 어려운 점들이 가로 놓여있는 것이다.
우선 담배경작 감소에 따른 문제가 제기된다. 기술제휴에 의해 생산되건, 완제품이 수입되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제선호 경향으로 보아 30%정도의 시장잠식은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게 전매청의 예측이다. 그럴 경우 담배경작 면적은 최고 21%까지 축소돼 경작 탈락농가가 2만3천여 가구, 연간 농가소득 감소가 3백75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매청은 주장하고 있다.
양담배가 들어가 시장을 잠식한 경우로 프랑스 35%, 이탈리아 40%, 스페인 27% 등을 전매청은 예시하고 있다.
물론 지난 59년 제한적 완제품 수입이래 73년 라이선스 생산을 거쳐 금년 수입 완전자유화조치를 취한 일본에는 양담배가 2%밖에 침투하지 못한 특수한 예도 있으나 이는 양담배에 대한 유통구조의 봉쇄, 굳이 양담배를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의 국내제품 고급품질, 외제품 배격사상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개방상의 여러 가지 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담배 수입개방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제일 큰 이유는 역시 미국 압력을 이겨내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 84통상관세법을 제정, 미 시장개방에 맞추어 개방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무역 상대국에 대해서는 소위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었다. 이미 미국정부는 담배개방과 관련지어 특혜관세(GSP) 축소와 수입규제증대의 위협을 가해오고 있다.
또 우리 정부로서도 자유무역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누차 표방해온 터에 담배의 수입은커녕 소지도 금지하는 폐쇄적·부정적 입장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86년이면 아시안게임, 88년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대외개방 이미지를 부각시킬 필요가 절실해졌다.
일반적인 개방형태로는 ①기술도입 및 라이선스 생산 ②합작투자생산 ③완제품 수입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필립모리스사는 ▲연내에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고 ▲86년에는 전부 국산 잎담배를 사용하는 국산 신 브랜드의 제품을 개발하되 로열티는 시장 잠식률에 관계없이 2천만달러 선으로 동결하고 ▲87년에는 합작 생산에 의한 외국브랜드생산(전량수출) 등 1차 단계로 국산담배의 질을 높인 후 2차 단계로 ▲88년 외제담배 일부 수입개방 ▲88년 이후 전매청의 민영화 등을 제시해 놓고 있다.
레이널즈사도 기술제휴 쪽을 희망하고 있다. 반면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사는 완제품의 국내판매를 뚫고있다.
필립모리스사와 레이널즈사가 기술제휴 쪽을 추진하는 것은 완제품수입의 경우 쿼터·고관세·유통제한 등 규제가 있겠지만 기술제휴제품은 겉으로 어디까지나 국내제품이므로 한국정부가 공급 제한을 할 명분이 약할 것이라는 판단과 고지 선점을 노리기 때문이다.
미국내 시장 점유율이 34·4%인 필립모리스사의 주종상품 말보로가 한국내 판매(관광 및 보세용)에서는 9·9%이며, 미 시장점유 31·5%인 레이널즈사의 윈스턴은 한국에서 5·6%인데 반해, 미국서 11·4%의 랭킹 3위이면서 한국에서는 주종상품 켄트의 시장점유율 24·8%나 누리고있는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사는 완제품 판매쪽이 자기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부처별 협의를 벌여오는 동안 재무부와 전매청은 재정수입 감소(담배 전매익금의 재정기여도 9%)와 국내 담배시장 잠식 우려 때문에, 농수산부는 농민 소득감소 때문에 개방부가 입장을 밝혀 왔으나 상공부·기획원·해협위 등은 국내 담배시장을 단계적으로 1∼2% 개방할 경우 국민 경제적 영향은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검토해온 개방안은 세 가지. 완전수입자유화는 비현실적이라 제외하고 ▲제1안=기술제휴에 의한 단계적 수입 자유화 ▲제2안=1∼2%수준의 제한적 수입 ▲제3안=전매청을 공사화, 외국회사와의 합작회사 설립을 통한 신제품 생산 등이다.
최근 정부에서조차 대외개방 속도와 폭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있다.
더구나 담배까지 서둘러 개방해야 되느냐는 국민감정상의 시비가 일고있다. 그 때문에 담배개방문제를 지렛대로 활용할 경우 많은 통상외교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아는 정부로서도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국산담배의 질이 당당했더라면 개방의 고민은 훨씬 적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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