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아직도 남아있는 "불발폭탄"|연재소설『숲은 잠들지않는다』를 끝내고… 박범신<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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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때마침 6·25 서른다섯돌을 맞는다.
얼마전 한강 밑바닥에서 발견된 불발폭탄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6·25때 미군이 투 하한 폭탄인데 탄두는 비록 녹슬었지만 그 성능은 여전하다고들했다.
35년이나 살상에의 유혹을 끈질기게 속으로 감추고 살아남아 있는 그 폭탄의 모습을 TV에서 봤을때 전율을 느끼지않을 수가 없었다. 그 폭탄은 결국 의도적으로 폭파돼 물기둥을 수m나 뿜어올리고 그 수명을 다했는데, 그러나 놈에게도 한은 남았을 것이다.
평화스런, 한강에서 물기둥이나 뿜어올리자고 제작되진 않았을테니까.
『숲은 잠들지 않는다』에선 네사람이 죽었다. 혼혈아 이애리가 죽었고 박만호·김성현·강미란이 차례로 죽었다. 작가라고 해서 어디 사람죽이는게 유쾌한 일이겠는가. 더구나 그들을 죽인 자들조차 인간적으로 그렇게 미워할 수 없음에랴. 따져보면 죽은 네사람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김인혁·유규하·유민영도 이번 소설에선「희생자」였다.
굳이 빗대어 말하자면 한강 밑바닥에서 발견됐다는 그 폭탄이 예고없이 터지면서 거기에 이애리부터 유민영까지 어이없이 희생된 꼴이다. 그러므로 이번엔 연재를 끝내고나서도 뒷입맛이 영개운하지가 않다. 그들 모두가 희생자일뿐 가해자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불발폭탄은 더 있으리라 한다.
사랑하는 아들녀석과 한가한 일요일 오후 가까운 한강으로 낚시라도 갈까하는 사람은 이제 재고(再考)해봐야 한다. 한강 밑바닥엔 적어도 그런 폭탄이 몇개쯤 더 감춰져 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6·25 비체험세대인 우리까지 목이 움츠러들고 살갗엔 소름이 돋는다.
6·25가 나무의 공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가슴속에만 박혀있는게 아니라 거기서 뛰쳐나와 우리들을 다시 살상할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희망이 물론 없는건 아니다. 나무들은 부러지고 뽑히거나 결국 죽기도 하지만 새로운 나무들이 또한 낳고 자라고 우거짐으로써 숲은 영원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원리가 우리들의 희망이다. 살아남게 된 혜인이나 「존」이나 현우는 아마 그 희망을 따라 살게될 것이다.
연재가 끝났으므로 이제 나는 자유롭다.
어떤때 원고지의 네모진 공간은 함정 혹은 틀처럼 뵌다. 원고장수 7장반으로 잘려 채워지는 직사각형의 연재소설란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이 함정일때 작가는 허위적거리고 그것이 틀일때 작가는 옴쭉달삭도 못하게된다.
그것에서 자유로와지기 위해 늘 싸우고 출혈하지만 매양 승리하는건 아니다.
신문연재가 보다 더 작가의 계속적인 긴장을 요구하는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한다. 1년3개월의 긴장된 작업이 끝났으니 이제 태백산맥 종주라도 하기위해 집을잠시 떠나려고한다. 이름모를 산야, 나무는 푸르고 새떼높이 나는 그곳에도 불발폭탄은 여지없이 숨어 있겠지만.
독자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많은 전화와 격려편지에 일일이 답을 드리지 못했던 것도 이번의 지상인사로 대신하는 걸이해해 주시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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