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에 냉기류....뇌우 예고|두 김씨 발언과 민정당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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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 김씨의 이른바 민주화일정 제시요구에 대해 민정당이 격렬한 특별성명으로 규탄하고 나섬으로써 하한정국에 갑자기 한냉전선이 흐르고있다.
정국기상의 이러한 급변은 먼 앞날의 뇌우를 일찌감치 예고하는 하나의 조짐이 아닌가하는 불안한 추측까지 낳고있다.
문제가 된 17일의 김대중·김영삼씨 회동에서 제시된 「민주화」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7월말까지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을 해주고 ▲정기국회까지 민주화일정에 대한 여야합의가 이뤄져야 하며 ▲그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내년 봄 이후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김씨가 「민주화」의 내용으로 제시한 것은 ▲개헌 ▲지방자치제실시 ▲자유로운 선거를 보장하는 제도개혁 ▲언론자유보장의 4가지이다.
이러한 주장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4일 두김씨와 신민당 이민우총재의 3자회동때도 내년까지의 개헌일정을 선언한바 있었다.
그렇다면 민정당이 이번 두김씨의 「민주화」요구에 대해 「사제민주주의」 「공적」 「정치협박」이라는 격한 용어를 구사하고, 특히 김대중씨에 대해서는 「혼란의 배후조종·독려」라고 맹렬히 비판하는 강경성명을 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실제로 민정당측은 두김씨의 민주화요구를 신민당 전당대회를 겨냥한 두김씨계파간의 알력, 당직배정에서의 불화등 내부분열상을 은폐하고 이를 외부로 분출하려는 허장격세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 「허세」를 향해 그토록 강한 반응을 보인것은 최근의 강경해진 정부·여당의 분위기때문인것 같다.
17일 두 김씨의 발표 직후 비교적 온건한 대변인의 논평발표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것이 강경특별성명으로 에스컬레이트되어간데는 민정당뿐아니라 당외까지 포함한 「집권층 전체의 불쾌감」이 있었다고 봐야한다. 실제 대변인 논평에 대해 미지근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기때문에 특별 성명이 나온것으로 알려져있다. 야당의 공세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짚어야할 대목은 반드시 짚고 넘어감으로써 「강한 여당의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것이 최근 여권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이러한 전제위에서 민정당은 이른바 「민주화의 시한설정」을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7월 사면·복권, 정기 국회시 민주화 일정합의라는 시한은 쌍방의 대화에 의한 납득할수있는 일정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승복의 요구이며, 심하게는 강서를 쓰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하고있다.
더우기 두김씨의 이같은 주장의 밑바닥에는 『조금만 더밀면 이 정권을 넘어뜨릴수있다』는 엄청난 오판」이 도사리고 있다고 민정당측은 생각한다.
따라서 민정당측은 이같은 「오판」을 불식시켜야 할뿐 아니라 야당측이 여당의 일방적 승복만을 요구하는 강경한 주장을 들고 나오는데 대해서는 강경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있다.
김대중씨 문제만 하더라도 비록 형집행정지처분의 취소를 고려하는 단계에까지 간 것은아니지만 이제는 사면·복권은 전혀 입밖에 끄집어낼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것이다.
여권의 이같은 경화상태를 야당측은 「위협적 자세」라고 비난하고 그들의 민주화요구는 당연한 국민적 열망이라고 되받아치고 나왔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지지가 그들의 요구를 정당화시키고있다는 주장이다.
그만큼 여야 양쪽에서 보는 시국, 특히 개헌과 정권교체 등 주요문제에 대한 인식의 격차는 넓고 깊다.
야당측은 ▲현행헌법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절차로 만들어졌고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측은 구체적인 개헌안의 내용은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지난 선거의 공약이었던 대통령직선제를 대안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에대해 민정당측은 ▲현행헌법으로도 정권교체가 가능할뿐 아니라 ▲7연단임을 규정한 헌법을 최소한 한번은 준수해야 할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개헌주장을 하는것은 무방하나 합의가 안되면 다음선거에서 개헌선을 확보하라는것이 민정당의 의회주의적 반론이다. 국회에서 과반수의 개헌제안선을 확보못한 야당측은 만약 여당이 개헌요구를 내년 봄까지 들어주지 않으면 국민서명운동을 통해 실력행사에 들어가겠다는것이다. 이것이 야당측의 민주화일정이고 시한이다.
민정당측은 최근 장외개헌운동을 힘으로 저지하기로 결정했다. 비합법적인 수단에 호소한다면 법의 시행이란 차원에서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는 생각이다.
결국 여야는 이와 같은 힘의 대결을 서로 위협적인 수단으로 배경에 깔면서 우선 민주화일정이라는 것에 대한 성명의 공방으로 그 전초전을 시작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양측의 정권의지가 얽혀있는만큼 어느쪽도 섣불리 양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같은 팽팽한 여야의 대결사이에 대화와 협상의 공간이 거의 배제되다시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측의 민주화 시한이라는 것은 「총선민의」라는 모호한 개념을 근거로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고, 여당측의 호헌론이라는 것도 집권의 이점과 개헌저지의석의 장악이라는 유리한 여건속에서 룰의 준수만을 요구하고 있을뿐이다.
쌍방이 자기네 입장만 고수한 채 목청만 돋워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사태는 더욱 가열될수 밖에 없게된다. 또 그같은 말초적 흥분이 본질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이 물리적인 대결상태를 서로 불안하게 생각하고, 사전에 피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면 개헌등 주요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수 있을것이다.
여당측에서는 『두김씨 모두를 대화의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있다.
야권에서도 개헌내용에 관해 여야의 합의라는 중간과정을 고려하고있긴 하다. 따라서 강경과 강경이 맞서는 가운데서도 이런 여운을 남기는 것은 서로 양보의 실마리를 찾아내 대화와 협상의 공간을 모색해보려는 의도를 여야 양측이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다고 읽고 싶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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