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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환상적 부패국가 정상 온다” 외교 결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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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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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90세 생일 잔치에서 여왕과 대화하는 캐머런 총리(오른쪽). [AP=뉴시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환상적인 외교 결례를 범했다.

여왕과 런던 반부패회의 관련 대화
지목된 나이지리아·아프간 발끈
시민단체 “자국 먼저 돌아보시길”

캐머런 총리는 10일(현지시간) 버킹엄궁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90세 생일 잔치에서 여왕과 대화하던 중 “환상적으로 부패한(fantastically corrupt) 국가들의 정상이 곧 영국에 온다. 나이지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은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두 국가일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자기 돈으로 오는 게 맞겠죠”라며 말을 받았 다.

여왕은 이에 대해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 있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언급한 국가 중 한 국가의 대통령은 실제로는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BBC는 대주교가 언급한 대통령은 나이지리아의 무함마드 부하리 대통령이라고 해석했다. 부하리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12일 열리는 런던 반부패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왜 부패에 함께 맞서야만 하는가’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도 이 회의에 참석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캐머런 총리가 런던 반부패 정상회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 발언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영국 총리실은 “총리는 발언 장면이 녹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CNN은 “영국 총리가 지나치게 솔직했다”고 평했고, BBC는 “총리가 한 외교적 실수 중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두 국가는 즉각 반발했다. 부하리 대통령은 “총리는 나이지리아의 과거 모습만 본 게 틀림 없다. 당혹스럽지만 지금 우리는 훌륭히 부패와 싸우고 있고 전 세계가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주재 아프간 대사관도 “불공평한 발언”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지난해 부패인식지수에서 아프가니스탄은 166위, 나이지리아는 136위를 기록했다.

반부패 시민단체 ‘글로벌 위트니스’의 로버트 파머는 “캐머런 총리는 다른 나라를 비난하기 전에 자국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나이지리아와 아프간이 부패한 나라지만 정상들은 부패와 싸우려 노력하는 반면, 영국은 조세피난처 문제 등에서 부패와 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조세 회피자들의 명단이 공개된 파나마페이퍼스에선 캐머런 총리의 부친 이언 캐머런의 이름 등 영국 국적을 가진 2000명의 이름이 발견됐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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