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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아니면 ‘아니오’ 라고 한 벽창우…4·19 때 탱크동원령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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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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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 전 국무총리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인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10일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95세.

5·16 땐 반혁명장성 1호 체포
노태우 정부서 2년간 총리
90년 평양서 만난 김일성
‘강영훈 총리 각하’ 호칭도
“천생 학자이자 꼿꼿한 선비”
이홍구 전 총리, 고인 추모

1921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태어난 강 전 총리는 호(號)가 청농(靑農)이지만 이보다는 스스로를 벽창우(碧昌牛)라 불렀다. 벽창우란 평북 벽동(碧潼)과 창성(昌城) 지방의 크고 억센 소란 뜻이다.(고인은 1921년생이나 출생신고를 1922년에 함)

실제로 강 전 총리는 군인, 외교관, 정치인, 행정가로서 벽창우처럼 현대사의 굴곡과 역경을 견뎌 나갔다.

41년 만주 건국대학에 진학한 강 전 총리는 재학 중 학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8·15 광복 후인 46년 국방경비대 소위로 임관하고, 육군 제2사단장(53년) 등을 거쳤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제 6군단장 시절 4·19혁명(60년)을 맞았다. 그의 벽창우 기질이 그때 유감없이 드러났다. 당시 김종오 육군참모차장이 “전차중대를 출동시키라”고 명령했으나 강 전 총리는 “탱크로 학생들을 깔아뭉개버리겠다는 얘기냐”며 단호히 거부했다.

육군사관학교장 재직 중 일어난 61년 5·16 정변 땐 당시 박정희 제2군부사령관에게 사관생도를 혁명 지지 시위에 동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전두환 대위 등 육사 11기 졸업생들도 찾아와 “사관생도들의 시가행진을 허가해달라”고 했으나 강 전 총리는 “사관생도들을 정치 도구화하는 건 안 된다. 설사 후배들이 나서려고 해도 선배들이 말려야지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야 되겠느냐”며 일축했다.

이 일로 강 전 총리는 ‘반혁명장성 1호’로 체포돼 서대문교도소에 100여 일간 수감됐다. 강 전 총리는 1999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아니면 ‘아니오’ 해야지』에서 “ 군이 정치에 간여하면 헌정 질서를 파괴하게 되고 이것은 곧 공산체제에 대항한다는 대의명분을 흐리게 된다”고 썼다.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강 전 총리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72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인과 생전에 가장 가까웠던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떠난 강 전 총리를 (외무부 소속)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78년) 다시 부르셨다”며 “생전에 두 분이 화해를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총리는 이후 주영국 대사 겸 주아일랜드 대사(80년) 등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출범 후인 88년 13대 총선 때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그해 12월부터 노태우 정부에서 2년간 국무총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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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김일성과 회담 고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1990년 10월 북한 평양 금수산 주석궁에서 김일성을 만나고 있다. 가운데는 연형묵 당시 북한 정무원 총리. [중앙포토]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책에서 "총리의 권한과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강 전 총리는 90년 서울에서 연형묵 당시 북한 정무원 총리와 최초의 남북 총리회담을 개최하는 등 세 차례에 걸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남북 화해의 새 장을 열었다 .

강 전 총리는 회고록(『나라를 사랑한 벽창우』)에서 90년 10월 18일 평양 제2차 남북 고위급 회담 중 김일성 주석이 자신을 “강영훈 총리 각하”라 칭하자, 자신도 “주석 각하”로 불렀다는 에피소드를 공개 했다.

당시 면담에서 김일성이 “우리 민족이 6000만”이라고 하자 “6000만이 아니고 7000만 명입니다”고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일성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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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전 총리는 91년 제1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된 뒤 7년간 민간의 대북 지원 사업을 주도하면서 인도주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홍구 전 총리는 “근본적으로 천생 학자이고, 꼿꼿한 선비이시다. 화를 잘 안 내시고 모든 인간관계가 아주 유하셔서 후배들이 존경하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남 강성룡 변호사는 “생전에 ‘강 장군’ ‘앰배서더 강(강 대사)’이란 타이틀을 좋아하셨지만 아버지 성품에 가장 맞았던 자리는 적십자사 총재라 생각한다”며 “애민애족 정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전 총리의 장례는 대한적십자사 김성주 총재와 정원식 전 총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유족으론 부인 김효수 여사와 장남 강 변호사, 차남 강효영 변호사, 딸 강혜연씨 등 2남1녀가 있다.

현일훈·안효성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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