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실어증|이상복 <서울대의대신경과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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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창하게 말하던 사람이 말을 더듬거리게 되거나 헛소리를 하고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귀나 입, 또는 목에 이상이 없는데도 이러한 언어장애가 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뇌안의 언어중추가 손상되는데서 비롯된 실어증이다.
뇌의 언어중추에는 말을 이해하는 감각성 언어중추와 우리의 생각을 말로 엮어 소리를 내게 하는 운동성 중추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모두 오른손잡이에서는 왼쪽, 왼손잡이에서는 오른쪽 대뇌반구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오른손잡이인 사람에서 오른쪽이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면 실어증이 나타나지만 왼쪽의 반신불수에서는 전혀 언어장애가 없다.
언어장애는 뇌혈관장애나 뇌종양, 또는 뇌 외상 등 뇌의 손상된 부위나 범위및 종류에 따라 다양하다. 측두염뒤쪽 위에 있는 감각성 언어중추가 파괴되면 아주 심한 경우 남의 말이 말로 들리지 않고 단순한 소리로 들리게 된다.
그래서 질문이나 명령에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고 심한 욕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조금 가벼운 경우에는 말인지는 알지만, 그 말의 내용을 잘 모른다.
마치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외국어를 들었을 때 말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뜻을 잘 모르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데도 여러가지 장애를 보이는 수가 많다. 보통 낱말들은 올바르게 배열시키지 못하고 전보문처럼 낱말만 나열하는 수도 있고 꼭 맞는 말 대신에 비슷한 말로 표현하고 똑같은 말을 몇번씩 반복하기도 한다.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은 올바르게 말한다고 생각하는데도 헛말이 나오게 되어 뭐가 뭔지 모르는 말을 하게 되는수가 많다.
전부엽뒤 밑쪽에 있는 운동성 언어중추가 손상되면 심한 경우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보통 「그래」 「아니」정도나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몇마디씩 할수 있는데 제한된 몇마디 단어로 표현하려고 들기 때문에 남이 알아듣기 힘들다.
언어중추가 직접 파괴되지는 않더라도 언어중추와 기억및 학습중추와의 연락로가 끊어지면 실어증을 보인다.
이때는 말을 하려고 해도 그 말이 좀처럼 생각이 안나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담배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입에 물고 빠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시늉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건망성 실어증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병이나 뇌안의 신경세포가 파괴되어 뇌가 위축되고 퇴화되어 가면 말뿐 만이 아니라 생각과 지능도 단순화되어 추상하는 능력이 감퇴되고 상징적 표현이 점차 불가능해져간다.
실어증도 역시 신경과 전문의의 지도를 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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