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시민권 신청한 솔제니친의 근황|러시아혁명 소재 대하 소설지 지필 몰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소련의 반체제 망명 작가 「알렉산더·솔게니친」(66)이 미국이주 9년 만에 미국시민권을 신청 또다시 주목을 끌고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암범동』등 소련「스탈린」 치하의 학정이 빚은 고통과 절망과 박해를 고발했던 그는 70년대를 통해 냉전이 산출한 「거대한 패러독슨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었다.
그는 소련 전체주의를 본질적 악의 화신으로 고발함으로써 서구사회, 특히 보수계열의 열광적 환영을 받으며 74년 스위스에 왔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서구사회의 몰락을 예언하면서 서구의 범폐를 신랄하게 공박함으로써 그의 「도덕적 자만심」에 대한 비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늘 타의에 의한 자신의 망명에 대해 『언젠가 소련에 다시 자유가 돌아오면 소련으로 돌아갈 것』이며 자기가 『반소작가가 아니라 애국자』라고 주장해 왔다. 서구사회를 비판하고 소련에 대한애착을 강조해온 그가 왜 이제 와서 미국시민이 되기로 결정했는가?
이에 대해 그는 침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번호부에 기재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기자의 접근을 엄격히 막고 있다. 사진기자의 접근을 막기 위해·버몬트주 캐번디시에 있는 그의 50에이커 (약6만평)짜리 저택주위에는 철조망을 쳐놓았고 경비견도 키우고 있다.
재혼한 부인 「나탈리아」여사(45)와 3명의 아들과 함께 은둔생활을 하는 그는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기회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 83년12월13일 그의 셋째 아들 「이그나트」군(11)은 버몬트주의 한 음악홀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이 아이의 데뷔가 되는 이 자리에 부인을 비롯한 온가족이 참석했지만 「솔제니친」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 84년5월25일 6년 만에 처음으로 공석상에 나타나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훌리 크로스대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도 대학의 협조로 그의 참석사실이 수여식 아침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이에 앞서 그는 82년5월11일 백악관이 그를 포함한 6명의 소련 반체제인사를 외해 베푼 오찬 초청도 거부했다. 「레이건」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는 『상징적인 대면에 시간을 소비하기에는 나의 생애가 너무짧다』고 썼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자기 집에서 기자와의 회견을 단 한번 허용했다. 83년 8월에 있은 이 회견은 자기가 살고있는 버몬트주에서 간행되는 버몬트 라이프지와의 인터뷰였다. 이것도 간단히 마련된 것이 아니고 「리처드·스넬링」주지사가 직접 요청해 이루어졌다.-솔제니친」은 회견을 수락하면서 『내가 조용한 생활을 할수있도록 주민이협조해준데 대한 답례』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솔제니친」은 현재 의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붉은수레바퀴』 라는 제목의 대하소설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아침8시부터 밤10시까지 쉴새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총 8권으로 계획되고 있는데 그는 지금 제4권을 집필중이라고 한다. 『붉은 수레바퀴』 제1권은 최근 파리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됐다.
망명초기에 「솔제니친」이 받은 환대는 이제 많이 식었다.
초기에 서구에서는 「솔제니친」을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고도 했고 그의 작품 『수용소 군도』를 심지어 「단테」의 『신곡』에 까지 비유하는 평가가 나왔었으며 서구의 모든 언론이 그의 말을 크게 보도했었다.
그러나 그의 비판안이 서구 쪽으로 돌러지면서 그런 찬사는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솔제니친」 에 대한 무조건매료가 시들기 시작한 분수령을 대개 1978년6월, 그의 유명한 하버드대졸업식연설로 꼽고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서구의 물질적 풍요가 「도덕적으로 열등한 행복감」을 가져왔으며 민주주의 절차는 뛰어난 인물의 등장을 막아 저질 정치인의 득세를 조강하고 있고 상업주의의 노예가된 언론이 시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서구의 범죄가 소련사회에서 보다 더 만연되어 있음을 통박하고 결론적으로 만약 서구사회를 소련의 모델로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노』라고 대담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와 같은 서구비판의 바탕에는 항상 소련 전체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지보의 이상향을 서구에서 찾으려다 실망한 이상주의자의 좌절감이 흐르고 있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악관 때문에 미·소의 궁극적인 공존을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보는 많은 서구지식인들이 그를 회의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그의 문학적 자질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평음가있다.
그는 83년5월 런던 타임즈 지와의 회견에서도 『서구에와있는 동안 나는 비관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갖게된 서구비판안에는변함이 없음을 다시 확인했다.
따라서 「솔제니친」의 미국시민권 신청이 그의 서구관에 어떤 변화를 뜻한다고 보지않는 것이 안전할듯하다.
그의 견해에 찬성하든 않든 간에 그의 발언들은 자만심에 빠진 서구인들에게 창의적 충격을 가한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옹고집은 그대로 남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것같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