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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미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변심 애인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백서의 서울도심 대로에서 일어난 살인이 치정극 치곤 너무 쇼킹하다. 20대의 범인이 「변심 애인」을 직장까지 찾아가 끌어낸 뒤 저격했다는 것이 도무지 살벌하기만 하다.
범인은 지난해 12월부터 사귀어온 애인이 최근 변심한데 화가 나 범행했다고 동기를 말하고있다.
이 몇 달 사이에 그들의 사랑이 어느 만큼 깊었고 확실한 것 이였던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범인이 애인의 「변심」 을 알고서 격정적인 증악감을 살인행위로 옮겨간 사실만이 무섭게 떠오른다.
그런 사랑의 갈등은 문학작품에도 나온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는 사랑의 의심이 빚는 살인을 비장하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 「오델로」가 「이야고」의 농간에 놀아나 「진실하고 충성스런」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한 끝에 목을 졸라 죽인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랑의 진실은 영원하며, 사랑의 미망은 두려운 것이라는 인생론적인 증언이다.
사랑의 「배신」 에 대한 앙갚음만이 있는 살인사건은 아무 감동을 주지 않는다.·
사랑의 진실과 소중함은 오히려 가해적인 표현보다 자해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괴테」 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은 주인공의 실연 자살을 주제로 해 영원한 문학적 번기를 남기고 있다.·
우리 문학에 그런 아름다운 사랑의 사건이 별로 없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한 문제일 것도 갈다.
오히려 현실의 사건들은 사랑과 배반에 이은 살인의 격정만이 남는 살벌한 장면 들을 남기고 있다.
음독동반자살이 많은 건 최근의 경향이다.
지난 4월엔 부모가 결혼을 반대한다고 비관한 끝에 호텔에서 애인을 목 졸라 죽인 대학생도 있었다. 작년엔 다른 남자와 사귄다고 애인을 바닷 속에 밀어 넣어 죽인「부산 미스 태평양」 살인사건도 있었다.
「사랑」의 좌절이 빚은 결과이지만 너무 생경하다는 인상이 짙다.「에리히·프롬」은 그런 격정을「좌절에 의한 격정」으로 분석했다.
원망과 욕구가 좌절될 때 공격적으로 되는 경향이다.
그 중에는 증악과 질투에서 생긴 격정도 있다. 그것들은 아직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그러나 분노의 격정은 파괴적이다. 사랑의 배신을 받은 범인이 절망감 가운데 자포자기의 파괴적 행동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어쩌면 이 불행은 「사랑」 이 쉽고 흔해 빠진 이 세태에 한 모습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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