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밤 청와대서 무슨 얘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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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대철 대표. 그가 11일 오전 4억2천만원을 굿모닝시티에서 받았다고 시인할 때만 해도 모두는 그가 대표직을 사임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날 오후 1시쯤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나타난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이상수 총장에게 10억원을 주었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그 말을 꺼냈다. 이에 한 기자가 물었다. "대표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할 겁니까. " 대표직을 유지할 거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럼"이라고 답했다. 실은 이미 전날 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대표직 유지 약속을 받아놓고 4억2천만원 수수를 고백했던 鄭대표였다. 경위는 이렇다.

10일 밤이다. 그는 盧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을 전후해 盧대통령과 독대를 한 것 같다.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렇게 전했다.

"어젯밤 鄭대표가 盧대통령에게 돈을 받은 내역을 얘기하면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다 얘기했다. 그러자 盧대통령이 '사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시면 정치를 하시기 어렵게 되지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고 했다."

鄭대표 거취 문제는 그것으로 일단락됐다는 것이다.

鄭대표는 11일 오전 2시쯤 신당동 자택에 들어 왔다. 그리고 오전 8시30분 다시 집을 나섰다. 기자를 만나자 鄭대표는 "이따가 의총에서 다 밝히겠다"고 한 뒤 시내 한 커피숍에서 김상현(金相賢)고문.이낙연(李洛淵)대표비서실장을 만나 거취 문제를 최종 숙의했다.

金고문은 그 자리에서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한다.

"내가 정치자금법으로 세번 입건됐는데 두번은 무혐의, 한번은 무죄였다. 박관용이도 이기택이도 다 무혐의였다. "

정공법의 대처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미 대표직 유지 약속을 받아놓은 鄭대표로선 차라리 다 밝혀두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이어 열린 의총에서 "鄭대표는 정치제도의 희생자"(李在禎 의원), "검찰이 정치검찰화하고 있다"(林采正 의원)는 강성 발언이 잇따랐다. 구주류 핵심인 정균환(鄭均桓)총무도 "검찰의 행태에 규탄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맞장구쳤다.

힘을 얻은 鄭대표는 중진 의원 몇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계속 간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한다. 그리곤 다시 국회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한 뒤 대표실 문을 잠그고 다음 수순을 생각했고 저녁 무렵 2백억원 얘기를 꺼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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