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갑상샘 기능 떨어지면 당뇨병 위험 13% 높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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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체형인데 당뇨병 왜 생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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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의 가장 큰 원인은 비만이다. 그러나 뚱뚱하다고 모두 당뇨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엔 정상 체형이지만 당뇨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전체 환자의 절반가량은 비만이다.

허리둘레(남자 90㎝, 여자 85㎝ 이상)를 기준으로 하면 50.4%가, 체질량지수(BMI) 기준으로는 44.4%가 비만을 동반한 당뇨병 환자였다. 나머지 절반은 정상이거나 마른 체형이란 얘기다. 뚱뚱하지 않다고 평소 의심 없이 지내다 뒤늦게 발견하면 이미 합병증이 생긴 상태일 수 있다.

유독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에게 비만을 동반하지 않은 당뇨병이 많은 이유는 인종적 특성 때문이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당뇨병은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하거나 적게 분비돼 발병한다. 보통 나이를 먹으면 췌장 기능이 떨어져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한다. 이는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양인은 이를 상쇄할 정도로 췌장에서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는 반면,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적게 분비되는 경향이 있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김대중 교수(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는 “서양인은 뚱뚱해도 췌장이 쌩쌩해 당뇨를 극복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뚱뚱할 겨를도 없이 혈당 조절이 안 되고 당뇨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운동·식이요법 통해 혈당 조절

안타깝게도 약하게 타고난 췌장 기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현재 없다. 췌장 기능을 더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혈당을 조절하는 것뿐이다. 가족력·나이·비만 외에도 췌장 기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많다. 정상이거나 마른 체형의 당뇨병 환자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최근 췌장 기능을 떨어뜨리는 새로운 원인이 밝혀져 눈길을 끈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라얄 차커 박사는 갑상샘 기능이 떨어지면 당뇨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내용의 논문을 지난달 미국내분비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는 일반 성인 8452명을 8년간 추적 관찰했는데 798명이 당뇨병에, 1100명이 당뇨병 전 단계에 걸렸다. 비만 등 다른 변수를 제거한 결과 갑상샘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당뇨병 위험이 1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 전 단계에서 당뇨병으로 진행할 위험은 25% 높았다.

그는 “갑상샘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낮기만 하면 당뇨병 위험이 커진다”면서 “그 원인은 갑상샘 호르몬이 췌장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목 앞쪽에 있는 갑상샘은 우리 몸의 관제탑 역할을 한다. 호르몬을 분비해 심장 수축, 산소 소모, 체온 조절, 위장관 운동, 적혈구 생성, 다른 호르몬의 대사 등을 적절히 조절한다. 갑상샘 기능이 떨어졌다는 건 분비되는 호르몬이 줄었다는 의미다. 인체 기계가 돌아가는 속도가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추위를 느끼고 쉽게 피곤해지며 피부가 건조해진다. 기억력이 감퇴하고 우울해지며 식욕 부진과 체중 증가가 동시에 올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갑상샘 기능 저하증 환자는 41만3797명이다. 여성이 85.3%로 압도적이었고, 연령별로는 40~50대가 많았다. 갑상샘암 등을 이유로 갑상샘을 절제했거나 갑상샘 호르몬을 만드는 신호체계에 이상이 생겼을 때, 갑상샘염으로 갑상샘 자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 면역세포가 갑상샘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갑상샘 기능 저하는 간단한 피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검사 결과 갑상샘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당뇨병에 주의해야 한다.

잠 잘 자고 햇빛 많이 쬐면 위험 감소

췌장 기능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은 수면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영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수면 질이 나쁜 사람의 당뇨병 발병 위험은 일반인의 2.6배나 된다. 체질량지수가 1 오를 때(1.2배)보다 위험하고, 가족력이 있을 때(2.8배)와 비슷한 수준이다.

김 교수는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분비가 늘어 췌장 기능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하루 4.5시간 자는 사람은 8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병 위험이 16% 증가한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있다.

야외활동도 당뇨병과 큰 연관이 있다. 비타민D 결핍이 문제다. 그동안 비타민D가 부족하면 체중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스페인 말라가대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D 결핍은 비만과 관계없이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

연구를 진행한 마누엘 곤살레즈 박사는 “일광욕을 통해 비타민D를 충분히 합성하면 체중과 무관하게 당뇨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비타민D는 하루 최소 30분 이상 햇빛을 쫴야 충분히 합성된다.

각종 독성 물질 역시 당뇨병 위험을 높인다. 농촌에서 주로 사용하는 농약이나 미세먼지 속 중금속, 환경호르몬이 췌장 기능을 망가뜨린다. 김대중 교수는 “당뇨병의 3대 원인인 가족력·나이·비만 외에도 각종 독성물질이 췌장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수은·납·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아주 낮은 농도라도 지속 노출됐을 때 췌장과 호르몬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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