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5) 제82화 출판의 길 40년(48) 일제하의 출판관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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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동안 두 회에 걸쳐 일제하의 금서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엔 그와 같이 금서처분을 할수 있었던 그들 나름의 출판관계 법령과 그 언저리를 살펴본다. 일찌기 1886년 서양식 활판인쇄술에 의하여 최초의 국한문 도서인 『농정활요』가 간행됨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현대출판의 새로운 국면에 다가섰다. 이보다 앞서 1883년에 관보형식의 순한문 표기인 『한성순보』가 나오고, 이어 1896년엔 서재필에 의하여 최초의 민간지인 순한글 격일간 『독닙신문』도 창간된다. 이듬해인 1897년엔 최초의 현대식 서점으로 회동주관이 생겼다.
이같은 새로운 문명의 조짐이 싹트는 세월 속에 1899년 6월 대한제국 내부에서 신문조례전문 33조를 기초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자료에 접하지 못해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이어 일제 무단정치의 영향권에서 1909년(융희 3년) 2월23일 법률 제6호로 「출판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은 그동안 여러번 언급된 바와 같이 일제하를 통하여 조선인의 출판활동을 억제하고 식민통치 수단으로 이용된 악법의 하나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악법으로 1907년(광무 11년) 법률 제1호인 「신문지법」이 있다. 이것을 흔히 광무신문지법이라 부른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법이 우리조선인의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통제한 법적 배경인 것이다. 즉 출판활동은 「출판법」 제2조에서 출판할 때마다 미리 고본을 붙여 허가를 얻는 제도였고, 신문은 과다한 보증금 등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어 발행 청원서를 제출해야 했다.
다만 신문의 경우는 매회 발행에 예선(미리, 먼저란 뜻)하여 그 2부를 관할청에 납부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신문은 형식상 사후 검열인 셈이었다. 한편 출판법은 제5조에 전기 제2조의 허가를 얻어 출판한 때라도 즉시 완제본 2부를 관할청에 송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출판법」은 전문 16조 중 제11조아하 조항에서 벌칙의 적용을 규정했다.
즉 제11조는 무허가 출판자의 형량을 국헌문란일 경우 징역3년, 군사기밀 출판일 경우 징역 2년이하, 안녕질서와 풍속 교란은 10개월이하의 금고형이다. 그런데 이 벌칙은 단순히 인쇄를 담당한 자에게도 같다고 되어 있어 인쇄인의 책임을 묻고 있다.
제12조는 외국인 저작물, 외국에서 발행된 도서에 대한 압수조건을 규정하고, 제13조는 동법을 위반한 도서의 발매·반포금지와 압수 요건을, 제14조는 발매금지 도서의 정을 알고 발매·수입한 자에 대해 6개월의 금고형을, 마지막 제16조는 이미 출판된 저작물이라도 안녕질서 방해와 풍속교란의 염려가 있음을 인정할 때는 언제고 발금·압수할수 있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출판법(1893년 4월 공포)에서는 조선에서와 같은 사전검열 조항 따위는 찾아 볼 수가 없었으며, 단지 「출판할 때에는 발행날로부터 도달할 일수를 뺀 3일전에 제본 2부를 첨부하여 내무생에 재출해야 한다」로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일본은 애당초 출판법이 생길 때부터 사전검열의 출판 규정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출판법 위반에 대한 형량도 조선에서 실시하고 있는 「출판법」의 형량에 비해 매우 가볍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국헌 문란 도서의 출판은 일본에서의 출판법에서는 경금고(가벼운 유기 금고를 말함)에 처하고 그밖에는 대개가 벌금의 부과다. 한편 1912년 3월엔 조선총독부령 제40호로 「경채범처벌규칙」을 공포하여 일선 경찰관에게도 불온문서·도화·시가의 게시·반포 등을 단속케하고 동 규칙 위반자는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했다. 또 1936년 6월엔 일본에서 「부온문서림시취체법」이란 특별법이 공포되어 이와 보조를 맞추어 「조선부온문서림시취체령」이 나오고, 중일전쟁 도발 후인 1938년엔 「국가총동원법」이, 1941년엔 「언논·출판·집회·결사 등 임시취체법」을 실시, 부의의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선에서의 언론과 출판에 대한 통제를 극대화했던 것이다. <정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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