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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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민중은 누군가. 요즘 국회에선 이런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졌었다.
한 관계장관은 질의 답변에서 「민중」 을 『자본가, 신흥중견층을 제외한 특정계층의 연합』 이라고 규정했다. 필경 논란이 되고 있는 「삼민」투 위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개념같다.
「삼민」 투위의 한 유인물을 보면「도시민중」 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노동자와영세상인, 도시빈민, 중소상공업자, 그리고 학생』-. 그러니까 부르좌혁명에 끼지 않은 무리들이라는 것이다.
신민당의 「민중」 은 뉘앙스가 좀 다르다. 『유신이래 억눌려서 탄압받아온 국민들』 을 「민중」 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7O년대이후 「민중」 이라는 표제가 붙은 사작들이 잇달아 나온 현상부터 주목하게 된다.
70년대 「민중문학론」 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어 온 문학평론가 백낙청씨는『민중은 누군가?』라는 논문에서 『국민은 대중이기도 하고 민중이기도 한데, 늘 억눌려 살면서도· 역사의 온전한 주인으로서 자기를 의식하는 대중이 민중』 이라고 했다.
이런 문제에 항상 예민한 반응을 보여온 한완상교수 (서울대) 는 민중을 세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생각했다.
『…정치적 지배집단에 대해서는 정치적 민중이 있고, 경제적 지배집단에 대해서는 경제적 민중이 있으며 문화적 지배집단에 대해서는 문화적 민중이 있다』
그는 이들 세가지 민중가운데 『오늘은 어디서나 정치적 민중이 특히 두드러진 의미를 갖는다』 고 했다.
「민중」 이란 한자는 벌써 『관자』나 『묵자』 같은 고전에 나왔다.『맹자』 에는 그 말을 거꾸로 「중민」이라고도 했다. 서민, 민서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 글귀를 보면 지배층 (군주) 과 구별되는 「민의 무리」가 바로 민중이었다.
그러나 이 「민의 무리」 가 자각과 행동에 눈을 뜨면서 모습을 달리 하게 되었다. 1893년 11윌 전봉준의 격문에 등장한 민중은 『낫네, 낫서, 난리낫서』 를 외친다. 「주체적 성향과 집단적 행동」 의 무리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민중」 이란 말이 특히 유신시대와 같은 정치적 혼란기에 「긴장된 언감」 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런 상항적 배경 때문인 것 같다.
정작 이 말을 영어로 옮기면 「피플」 (people)이 된다. 사회주의국가의 「인민」 과 뉘앙스가 갈아 또 다른 긴장감을 준다.
말이 그 시대의 거울이라면 우리는 확실히 어지러운 거울을 들여다보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민중」의 정의는 쉽게 결론이 날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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