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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Behind & Beyond] ‘동파육 인생’ 이연복 셰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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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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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 셰프를 처음 만난 게 2008년이다.

중화요리 4대 문파의 대가를 한자리에 모아 사진을 찍을 때였다.

14명 중에 그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자리에 모인 그들, 하나같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처음인 만큼 감격해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 위한 자리 배치를 시작하자마자 미묘한 기싸움이 일어났다.

너나없이 대가인 그들, 자리가 자존심이었다.

그 와중에 오른쪽 맨 뒷자리를 자처한 이가 있었다.

바로 이연복 셰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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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그를 다시 만났다.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붐을 타고 인기 절정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처음 정한 인터뷰 시간이 토요일 밤 10시였다.

그만큼 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다는 의미였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일요일 오후 3시로 시간을 변경해서야 만났다.

그를 만나러 가며 불과 함께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작정했다.

언젠가 그가 내게 말했었다.

“난 불과 함께 살아온 인생이야.”

불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주방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브레이크 타임의 주방,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정리와 청소, 저녁 재료 준비에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기로 약속한 시간 20분 전에야 주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번갯불에 콩 볶듯 준비를 하고 불과 함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그 불 뒤에서도 자연스러웠다.

불과 함께 살아온 삶의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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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

20대 중반 축농증 수술로 후각을 잃었다.

요리사에겐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가 인생을 ‘동파육(東坡肉)’에 비유한 적이 있다.

6시간 이상 조리 끝에야 완성되는 음식이다.

어쩌면 후각 없이 미각만으로 오래 다져온 삶과 닮았으리라.

●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포토 칼럼을 Saturday 지면에 연재합니다. 취재원을 앵글에 담으면서 나눈 대화를 밑그림 삼아 그들이 꾸려가는 삶의 현장과 꿈을 따뜻한 마음으로 그려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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