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싱턴」을 움직이는 「로비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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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한국산 신발류가 미국제무역위(ITC)에 의해 미국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미 컬러TV는 반덤핑 관세를 물고 있고 철강류는 자율규제를 하고있다.
미국시장의 수입규제 장벽이 높아지면서 한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수입규제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요새 미의회는 섬유류 수입규제법안 등 각종 보호주의적 입법안을 다투어 제출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움직임에 대해 한국은 이제까지 거의 속수무책이었으며 특히 사전기반을 다지는 로비활동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4천여개 수출입업체의 민간 무역활동을 총괄하는 무역협회가 지난해 4월에야 워싱턴에 현지 사무소를 차렸다.
연간 1백억달러이상, 전체수출의 37%를 미국에 실어내면서도 워싱턴을 이처럼 등한시 해 온 것이다. 국내종합상사들도 마찬가지다. 워싱턴에 그나마 사무소라도 생긴 것은 지난해 컬러TV 덤핑쇼크가 계기가 됐다. 50여개 상사가 워싱턴에 진출해 정보수집과 로비활동에 열을 올리는 일본과 매우 대조적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물건을 파는 데만 급급했지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입안·결정엔 무관심했던 것이다.
작년초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반덤핑제소가 나오자 정부는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보내 30억달러에 가까운 물품구입을 계약, 미무마공작을 벌였다. 같은 시기에 미국을 방문해 「볼드리지」 상무장관 등과 교섭을 벌여 관민합동작전을 지휘한 김진호상공장관은 귀국후 『미행정부와 업계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이 입초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로비활동등을 통해 미정책입안 과정에 파고드는 것은 고사하고 한국의 실상조차 제대로 못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통상부문의 대미활동은 주로 사후약방문 격이었다. 로비활동이라는 것은 평상시의 오랜 접촉과 투자 등을 통한 지면과 지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에야 허둥지둥 서두른 식이었다.
우리나라의 대미로비가 일본이나 심지어 대만에도 크게 뒤지고 있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 것이다.
상거래분야 등에서의 전통, 현지사회에서 교포의 위치, 국내정치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빚어진 활동상의 제약 등등. 이에 덧붙여 업계의 로비에 대한 인식부족과 경비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단체의 대외로비활동은 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수십개씩이나 되는 각국과의 경제협력위원회, 친선협회 등의 모임이 있어 1년에 한두차례씩 접촉을 갖고있는 것도 광의의 로비에 포함될지 모르지만 적극적인 의미의 로비와는 거리가 있다.
무협의 경우가 그나마 지난해부터 워싱턴에 상설사무소를 두고 정보수집 등의 업무를 보고있다.
지난 한햇동안 무협 워싱턴 사무소의 예산은 1백만달러 정도였다.
여기에는 사무실 및 각종 기자재 매입 등이 포함돼 있어 이를 빼고 무협이 잡고 있는 연간예산은 30만∼40만달러선.
그 대부분은 상주 직원의 월급으로 나가고 실제 정보수집이나 관계인사와의 접촉 등으로 지출되는 경비는 거의 없다.
물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사안에 따라 변호사 고용 등에 필요한 경비가 따로 지급되도록은 되어있지만 정작 평소의 지면확보 등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배려가 안돼있는 셈이다.
무협의 올해 예산은 67억원으로 이중 일부가 뉴욕·동경·뒤셀도르프 등 3개 해외지부의 운영비로 사용되고 워싱턴사무소의 경비는 수출특계자금에서 충당된다.
수출특계자금은 연간 2백60억원 정도가 걷히는데 절반정도는 무공에 지원되고 나머지는 무협이 짓고있는 새 무역센터와 건설자금으로 충당되고 있어 로비활동 등에 쓸 수 있는 재원은 극히 한정돼 있는 상태다.
점증하고 있는 수입규제 등 통상교섭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 수출특계자금이 정작 써야할데에 안 쓰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경제단체는 경제사절단의 파견이나 접대 등 외에는 그나마의 해외로비활동도 전혀 없다.
대한상의의 경우 올해 예산40억원중 2억5천만원이 해외협력관계에 반영되었는데 이는 사절단파견과 접대 등에도 빠듯할 정도. 해외지부 등은 물론 없고 세계각국의 상공회의소와의 교류나 간행물 등을 통한 정보수집활동이 고작이다. 물론 이같은 교류도 보탬이 되긴 하겠지만 로비활동이라고 말할만한 계제는 아니다.
전경련은 단체의 성격상 국내에서의 로비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대외관계는 한국방문인사를 접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단지 지난해 대규모 구매사절단 방미때 그들이 한국을 너무 모른다는데 쇼크를 받아 작년 하반기부터는 미대사관의 협조로 방한인사의 명단을 받아 꼬박꼬박 전경련에 초청, 실상을 알리고 접대를 하는 장기포석(?)을 하고있는 정도다.
현재 국내의 조합·협회 중에서 미국현지변호사를 고문이나 수시계약형태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15개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이 컬러TV쇼크 이후인 84년에 계약을 맺은 것이고 그나마 몇몇 단체는 변호사를 공동으로 고용한 사례가 많아 전체고용변호사라야 10명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발수출조합·전자공업진흥회·타이어공업협회가 「데이비드·갠츠」를 고문변호사로 쓰고있고 공작기계협회·자물쇠업계·자전거공업협회는 「윌리엄·실버맨」, 피혁제품수출조합·금속공업협동조합·사카린 3사는 「데이비드·팰미터」를 활용하고 있다.
업체에서는 삼성이 미3대 법률회사의 하나인 아놀드 포터사에 일을 맡기고 있고 금성이 다우, 「론스·앨버트슨」을 쓰고 대우가 「오펜하이머」 등 4명과 관계를 맺고 있다.
무역협회는 아놀드 포터 법률회사와 변호사겸 로비스트인 「맴그렌」을 컨설턴트로 상시 활용하고 있다.
무역협회의 경우 상시고용관계에 있는 아놀드 포터에 월1만5천달러를 지급하고 있고 신발협회의 경우는 연간 2만달러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있을 경우에는 별도의 비를 지급, 가전3사는 컬러TV경문제에 1백50만달러, 철강협회는 1백만달러를 썼다고 한다.
미국의 모든 법안과 정책의 배후에는 상충되는 이익집단의 타협이 필수적이고 여기에 통상로비가 개입된다. 로비활동에 관련기관과 관계인사가 직접·간접적으로 활발하게 동원된다.
변호사나 컨설턴트를 통한 문제해결이나 한걸음 나아가 정보수집·판단도 중요하지만 적극적 로비에 우리라고 계속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는게 미국식 절차인 것이다.
차제에 정부는 대미통상과 관련, 사전대비체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미선거유권자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이전이나 합작투자를 늘려 이들이 자체 이익옹호에 나서게 하는 한편 신발이 문제되면 미신발수입업협회나 소비자단체가 나서도록 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포석이지만 교포조직을 강화·활용한다는 구상도 있다.
현재 넓은 의미의 로비를 총괄하는 정부부서는 기획원해외협력위로 돼있다. 그러나 업무추진이래야 상공부·외무부 등 부처별로 작성된 방안을 총괄할 뿐 대외활동을 뒷받침할 예산마저 없는 실정이다.
워싱턴로비에 관한한 아직 정부나 업계나 원시단계에 있는 것이다. <한남규·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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