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도의 간판 김재범(31·렛츠런파크·사진)이 정든 유도복을 벗고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김재범은 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할 땐 언제든 미련 없이 은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목표로 정한 리우올림픽 출전의 꿈은 부상 탓에 접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속팀 렛츠런파크의 코치로 새출발한다.
부상 탓 리우 꿈 접고 지도자의 길
한국 유도 선수 그랜드슬램 ‘2호’
런던올림픽선 왼팔 다친 채 금메달
김재범은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35) 여자유도대표팀 코치에 이어 한국 유도 역사상 두 번째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 제패)’을 이뤘다. 2008년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함께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2010년에는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정상을 잇달아 밟았다.
2012 런던올림픽에선 어깨 탈구와 팔꿈치 및 왼손가락 인대 부상이 겹쳐 왼팔에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불리한 상황을 딛고 우승했다. 경기를 마친 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죽기살기의 각오로 나섰다가 은메달에 그쳤다. 이번엔 죽기로만 도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고 외친 그에게 팬들은 ‘한팔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김재범에겐 이원희의 빗당겨치기, 라이벌 왕기춘(28·양주시청)의 업어치기와 같은 ‘주무기’가 없다. 때문에 늘 악바리같이 연습에 매달려 체력과 근성을 키웠다. “늘 부상을 달고 살았지만 핑곗거리로 삼고 싶지 않았어요. 빠진 어깨와 찢어진 인대, 부러진 손가락에서 밀려오는 극심한 통증을 딛고 승리할 때 느끼는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거든요.”
마디마디 부러진 채 굳어 S자 모양으로 휜 김재범의 손가락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는 “현역 시절에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가뒀다”며 “돌이켜보니 내 청춘과 함께 한 유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후회된다. 후배들에게는 ‘유도를 더욱 사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유도를 제대로 공부해 좋은 지도자가 되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길러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송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