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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을 움직이는 「로비 군단」<상>|줄잡아 2만명 한의원에 40명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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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보호주의 무드에 비례하여 워싱턴로비의 중요성이 고조되고 있다.
워싱턴의 로비전쟁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한국은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최근 잇달아 나오는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와 관련하여 워싱턴 로비활동의 실상과 한국의 대처방안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얼마전 워싱턴에서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83%가 아직도 한국을 미국경제원조의 수혜국이라고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때 우리는 미국인들이 한국을 너무 모른다고 개탄했었다.
그러면 한국은 미국을 어느정도 알고 있을까.
일반적 인식은 그만두고라도 당장 시급한 통상문제에 있어서 한국측은 워싱턴의 정가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사실은 컬러TV 철강 신발등의 대한수입 규제조치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정치, 안보면에 역점이 주어졌던 한미 관계는 양국간의 통상량이 불어나면서 통상면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워싱턴 정가에 대한 정보기능과 함께 한국측 입장을 홍보하기 위한 로비활동의 필요성은 그만큼 확대되어야 할것이다.
현재 한국업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로비회사는 38개이고 한국대사관을 대변하는 기관은 2개다.
그러나 명칭은 로비단체라고 부를수 있지만 이들이 실제 하는일은 「고문변호사」수준에 머물러있다. 한국회사가 요구하는 정보를 얻어다 주고 한국 본사의 중역이 방미할때 만나고 싶은 정치인과 접촉을 맺어주는 정도다.
로비활동의 본역인 대의회 실득활동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있는 상태인 것이다.
워싱턴의 한관계관은 『지금 한국은 로비활동을 위한 기반조성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초기단계에서 조차 대부분의 한국회사들은 스스로의 미숙성 때문에 제대로 대행회사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한 한국인 변호사는 한국인들이 미국변호사를 과신해서 『잘 알아서 해달라』는 식의 애매한 부탁을 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변호사 비용이 시간당 평균1백달러인 워싱턴에서는 고용회사가 정확히 변호사의 기능을 정해주지 않으면 인건비만 나가고 결과는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낭비를 피하기위해서 고용사는 고용사대로 워싱턴의 움직임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있어야 될것 같다. 지난해에 있었던 컬러TV사건도 부분적으로는 미국 변호사에게 모든걸 맡긴데서 초래되었다는 자가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쪽에서의 문제는 미국 정가서도 「웃사람」이 승낙하면 실무선은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있는데 있다. 장관을 만나 부탁을 한다든가, 이른바 「의원외교」차 방미한 국회의원이 미국의원 한두사람을 잡고 『통상문제를 잘부탁한다』는 식의 설득을 벌이는 일이 거의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된다.
워싱턴에는 줄잡아 2만명의 로비스트들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이 대상으로 삼고있는 상하양원 의원수는 5백35명이므로 의원한 사람당 40여명이나 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로비스트라면 「술과여자와 돈주머니」로 정객을 자기편으로 설득하는 정상배라는 인상을 풍겼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권력이 소수 세력가들 손에 집중되던 시대가 지나갔고 공개행정이 확립돼서 뒷거래가 불가능해 졌기 때문에 요즘의 로비스트는 『안성마춤의 정보를 제때에 요인에게 전달하는」 직업이 되었다.
그런 작업을 위해 파티를 열고 미인계를 쓰는것이 전혀 배제될수는 없겠지만 핵심은 역시정보전달에 있다.
로비스트란 직업이 이제는 「존경받을 만한」위치로 올라왔다는 사실은 지난83년 가을학기부터 워싱턴의 가톨릭대학이 로비학석사과정을 신설한데서도 찾아 볼수 있다.
「오닐」하원의장을 비롯한 의회중진들이 초청강사로 출강하는 이과정에서는 정치연설문 작성, 의회법안 작성법및 정치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또 로비를 많이 쓰고있는 제너럴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즈및 미국 산별노즈연맹(AFL-CIO)등이 이 학과 창설에 필요한 기금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변화로 보면 박동선이 시도했던 파티위주의 로비활동이 시대를 잘못 판단한 것이었음을 미루어 알수 있다.
어떤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을때 이를 반대하려는 로비스트는 의원들이 발언에 쓸 수있는 요긴한 반대자료를 제공하고 그것이 그 의원의 정치목적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득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회사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도 로비할때는 외국 회사의 이익이 아니고 외국회사를 돕는 것이 미국, 또는 특정 선거구의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제시해야 되는 것이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제 자동차수입규제에 관한 미국과 일본자동차 로비스트들의 설전이 좋은 예다.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로비스트들은 만약 일본자동차 수입을 규제하지 않으면 미국의 대일무역적자는 6백10억달러나 더 불어날것이라고 의원들을 설득했고 이에 맞서 일본자동차를 대변하는 미국 로비스트들은 규제를 계속할 경우 미국소비자들 부담이 1백억달러 불어날 것이라고 설득했다.
외국 로비스트도 로비활동을 할 때는 미국 유권자와 미국 이익을 앞세워야되기 때문에 미국에 기반이 굳은 이스라엘로비가 항상 돈많은 아랍 로비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랍로비는 자기들이 이스라엘 로비에 50년 뒤겼다고 보고 있으며 이스라엘로비를 「골리앗」으로, 자신을 「다윗」으로 견주고 있다.
일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윌리엄 클비」 전 미CIA국장, 「프랭크 처치」 전 상원외교위원장, 「리처드 앨런」 전대통령안보담당특별보좌관등 거물급을 기용했으나 별 성과가 없고 일본이 금력으로 고압적인 로비스트를 동원한다는 반발이 일자 거물 동원을 삼가고 있다.
그대신 일본로비는 요즘 미국상공회의소, 미국 여성유권자연맹, 소비자조합등과 연합전선을 펴고 한편으로는 일본상품규제가 미국소비자에 줄 추가부담을 일깨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농산물에 대한 역규제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설득작전을 펴고 있다.
일본은 2백61명의 로비스트를 고용, 년 1천7백80만달러의 비용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47명 고용에 4백50만달러를 쓰고 있다. 워싱턴 전체에서 연간 소비되는 법률관계비용 (대부분 로비비용)이 16억달러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외국 로비의 비율이 미국국내 로비에 비해 경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과의 비교에서 볼때 한국로비의 규모는 매우 미미하다.
통상규모나 경제력을 감안할 때 한국이 일본에 버금가는 로비활동을 할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도 이젠 한국의 실력에 알맞은 로비활동으로 여러규제조치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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