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나라당 특검초점 흐리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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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특검법안을 다시 고쳐 본회의에 상정키로 한 것은 명분도 실리도 포기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북한이 1998년부터 70여회나 핵 고폭실험을 했다는 고영구 국정원장의 국회 증언이 충격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1백50억원+α에 대한 특검수사와는 별개로 청문회에서 다뤄야 할 성격이 강한 것이어서 야당의 강경선회가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특검법안은 당초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법사위까지 통과시켰고, 민주당도 본회의 처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발의했던 한나라당이 갑자기 뒤집어버린 것은 명분이 없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지원정책의 적합성 여부는 정책선택의 문제이지, 수사대상이 되기 어려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대북 지원금의 북핵 개발 전용 여부를 조사한다지만 그 상관관계를 입증하려면 북한 당국자를 조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북한 당국자를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그 문제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김대중 정부가 북핵 개발 사실을 알고도 대북지원을 강행했는지, 왜 그 사실을 은폐했는지 등을 따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1백50억원+α수사와 별개로 추진해야 할 일이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사건을 묶어 처리하려는 것은 여당의 반대는 물론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빌미를 줄 수 있다. 야당이 이를 고집한다면 정치 공방만 몰고올 뿐이어서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검 수사 대상을 1백50억원+α로 한정하는 과정에서 보인 당내 불협화음, 당내 강경파에 휘둘린 여야 합의 번복 등을 지켜보면서 한나라당의 새 지도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보다 이를 더 부풀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야당 지도부는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다시 한번 합리적으로 의견을 조율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