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對국민 설득' 정부가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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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들은 언제 거짓말을 할까. 이성의 환심을 사고자 할 때, 선거에 출마했을 때, 잘못을 추궁당할 때? 빠질 수 없는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민사소송의 경우다.

순수한 법률 해석이나 법 이론만이 민사소송에서 승패의 관건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법원이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난다.

원고는 돈을 빌려줬다고 하고 피고는 돈을 꾼 사실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민사소송의 당사자는 하나의 사실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 그 정도는 더 심하다.

법원은 증거에 의해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원고와 피고 중 누구의 말이 사실인가, 즉 돈을 빌려준 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해 사실인정을 하고 이를 전제로 판결을 한다. 사실 민사소송은 당사자 중 적어도 어느 한쪽이 거짓 주장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 진실을 제대로 알릴 의무

법학자들은 당사자의 거짓 주장이 당연히 예상되는 민사소송에서 당사자는 진실이 아닌 사실을 주장하거나, 상대방의 진실한 주장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면 안 되는 의무, 즉 진실 의무를 부담한다고 한다.

당사자들의 거짓 주장으로 사실이 왜곡되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진실 의무에는 진실을 불완전하게 진술하거나 진실을 침묵해선 안 되는 완전 의무도 포함된다고 한다.

참여정부는 출범 이후 여러 현안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많은 경우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 간의 충돌.시위로 이어지며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폭행.협박과 같은 범죄 행위까지 발생하고 있다.

바람직한 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위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여론 수렴 과정에서 오히려 국민 간의 갈등이 심화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정부는 1978년 시작된 원자력발전의 결과물인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처리장 건설을 미룰 수 없다고 하면서 후보지로 네곳을 선정, 발표했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원자력발전과 그 결과물인 폐기물.폐기물 처리장이 모두 위험하다고 하면서 정부의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반대했다.

한편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의 주민 일부는 후보지 선정에 반대했고, 한 주민은 폐기물 처리장 건설사업의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게 처리장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감금 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정부는 환경시민단체의 주된 반대 이유, 즉 정부의 원자력 의존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의 타당성에 대해선 자세한 언급 없이 가득 찬 임시 저장소와 처리는커녕 보관도 못하고 방치될 수밖에 없는 방사성 폐기물의 그림을 강조해 보여주고 있다.

환경시민단체는 원자력발전.방사성 폐기물.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모두가 위험하다고 하면서도 계속 생기고 있는 위험천만한 폐기물의 처리 문제에 대해 현재와 같은 임시 저장소보다 처리장이 더 안전한 것은 아닌지, 언젠가는 가득찰 임시 저장소에 갈음할 처리장을 건설할 필요는 없는 것인지, 건설해야 한다면 처리장 건설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관한 일반 국민의 의혹에 대해선 충분한 답이 없다.

*** 핵 폐기장 갈등 골만 깊어져

정부는 한 처리장 후보지의 주민들이 감금 폭행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동원하면서까지 반대하게 된 원인, 그 지역에는 더 이상 원자력발전소 등 핵 관련 시설을 건설하지 않겠다던 정부의 약속을 이행할 수 없게 된 이유에 대해 충분하고도 적극적인 해명이 없고, 그 결과 일반 국민은 또 하나의 님비현상으로만 본다.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 진실 의무, 특히 완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는 볼 수 없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깊어만 가는 불신과 갈등의 골이다.

정책의 수립과 시행, 그 과정에서의 각계 각층의 의견 제시는 종국적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대립되는 목표를 추구하는 민사소송에서의 당사자들보다는 더 충실하게, 완전 의무를 포함한 진실 의무를 준수해야 하지 않을까.

曺秀靜(변호사)

◇약력:1961년 서울 생. 서울대 법대 졸업. 경력:서울지방법원 등 판사.이화여대 법대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