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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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입심으로 해학과 풍자의 세계를 펼쳐 문단 내 고유 지분을 확보해 온 소설가 성석제(43.사진)씨가 역사소설에 도전했다.

지난해 '문학과 사회'에 연재했던 장편소설을 다듬어 '인간의 힘'을 출간한 것이다.

'인간의 힘'은 임진왜란 직후 태어나 정묘호란.병자호란 등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군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명나라를 받들고 청나라를 배격하는 숭명반청(崇明反淸)을 평생 유일한 가치관으로 알았던 유생(儒生) 채동구의 외곬 인생을 다룬 소설이다.

성석제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영역인 만큼 기존 성씨의 소설을 대할 때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듯 싶다. 우선 '순정''번쩍하는 황홀한 순간''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등 전작들이 선사한 짜릿한 웃음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춰야 한다.

과거를 통해 큰 뜻을 펼칠만큼 문재가 빼어나지도 않았고 특출난 집안 출신도 아닌 평범한 채동구가 돈키호테나 포레스트 검프 식의, 망상에 가까운 믿음을 무모할만큼 반복해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충신열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는 게 소설의 큰 틀이다. 우스꽝스러운 채동구의 주특기는 뒷북치기다.

20대 후반인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임금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홀홀단신 '가출'한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반란은 제압돼 있다.

162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두번째 출도하지만 임금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에 가보니 역시 상황은 끝나 있다.

역사적 현장들마다 분연히 개입했던 채동구의 삶을 그리기 위해 불가피했겠지만, 역사책을 방불케 하는 사실과 전후사정에 대한 설명이 지루하다 싶을만큼 꼼꼼하고 길게 이어진다. 때문에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읽기에 속도가 붙는 것은 소설 중반 이후부터다.

채동구의 세번째 출도는 성공적이고 네번째 출도는 장렬하다. 천천히 희미하게 찾아온 감동은 어느새 머리꼭지까지 차 있다.

성씨의 육성을 들었다.

-역사소설이라는 낯선 분야에 도전했다. 그래선지 전작들에 비해 지루한 것 같기도 하다.

"역사소설? 역사 속 인물을 다룬 소설이라고 하고 싶다. 대개 역사소설은 소설이 다루는 시대상에 관심이 더 있지 않는가. 나는 사람, 인물에 관심이 더 컸다. 채동구같은 삶은 현대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본다. 역사적 사실로 소설을 채우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조선후기 혼맥.학맥까지 뒤적였고 아무래도 공부가 부족하다 보니 곳곳에서 부비트랩을 만났다."

-채동구의 행적은 어떤 면에서 황만근을 닮은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소설을 써서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두 인물 모두 겉모습은 봉두난발 수준이라고 할만큼 보잘 것 없고 남들로부터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변두리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속은 본질적으로 부드럽고, 온전한 단심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이 손상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채동구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인 오봉선생은 현실과 명분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한 후 계속해서 일관되게 밀고나간 인물이었다. 그런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흥미를 느껴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 채동구는 기질적으로 낙천적이고 머리도 비상한 사람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인간된 무엇인가를 관철한 사람이다."

신준봉 기자

*** 바로잡습니다

◇12일자 ‘행복한 책읽기’ S7면에 소개된 책『한국의 정치발전, 무엇이 문제인가』기사 제목 중 ‘이희수 지음, 일빛’은 ‘민준기 지음, 을유문화사’의 잘못이기에 로 바로잡습니다. 또 S5면에 소개된 소설 『인간의 힘』기사 제목 중 ‘성적제’는 ‘성석제’의 잘못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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