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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시장 혼란만 키우는 정부의 면세점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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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한국의 면세점 정책은 국회의 입법 횡포와 정부의 근시안적 시각이 결합하면 어떤 시장혼란과 퇴행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국회가 면세점업에서 재벌의 특혜를 없애겠다며 사업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1월 서울에만 4개의 신규 면세점을 선정하고, 2개의 기존 면세점 허가를 취소했다. 시장에서의 혼란은 전방위로 퍼져나갔다. 퇴출된 면세점 종사자 2000여 명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졌고, 이들이 폐업 전 재고정리를 위한 떨이 판매에 나서면서 다른 면세점들도 가격 경쟁에 비명을 질렀다. 해외 명품업계는 5년짜리 면세점에 물건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신규 면세점들이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새로운 면세점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사업권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고, 신규 면세점도 6곳을 더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정책을 신속하게 교정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이 면세점 업계의 글로벌 환경 변화와 관광구조의 변화를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면세점 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셀 때에도 정부는 사업자 추가 허가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일자리 차원에서 면세점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이래 곧바로 태도를 바꿔 6개나 늘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정도 면세점업 규모면 외국인 관광객이 연 10% 이상씩 꾸준히 늘어야 업계가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7.3% 줄었다. 또 한국이 면세점 특허 문제로 갈지자 행보를 하며 업계가 정체돼 있는 사이 중국과 일본은 대규모 면세점 투자를 단행하며 급팽창하고 있다. 면세점 업계의 글로벌 경쟁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재벌 특혜 방지를 위해 면세점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었던 게 사실이다. 거꾸로 이번에는 대통령의 일자리 지적에 부응하기 위해 면세점 정책이 또 다른 왜곡을 낳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