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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차, 과거는 묻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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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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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중국 베이징 국제 전람센터에서 개막한 ‘2016 베이징 모터쇼’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굴기(?起)였다. 충칭에서 베이징까지 2000㎞ 주행에 성공한 창안(長安)차의 무인 자율주행차 ‘루이청(睿騁)’. [사진 유길용 기자]

지난 25일 개막한 베이징 모터쇼의 첫 미디어 행사는 중국 완성차업체 창안(長安)자동차의 몫이었다. 이날 창안차는 자체 개발한 반자율주행차 ‘루이청(睿騁·Raeton)’을 선보였다. 루이청은 본사가 있는 충칭(重慶)에서 출발해 쓰촨성(四川省), 허난성(河南省) 등지를 거쳐 모터쇼가 열리는 베이징까지 약 2000㎞를 무인 기술로 달려왔다. 차량에는 전방 카메라, 전방 레이더, 고정밀 지도 등의 장비가 탑재됐다. 창안차의 주화롱(朱華榮) 대표는 “차선 변경과 추월, 신호등·목소리 인식 등에 성공하면서 6일간 2000㎞ 주행을 사고 없이 마쳤다”며 “이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자존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께 자율주행 기술을 일부 적용한 자동차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00㎞ 질주 무인차, 200㎞/h 전기차
“카피캣 눈총 받던 시대는 갔다”
70개 로컬 브랜드 기술력 뽐내
디테일·내구성은 풀어야할 숙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해외 브랜드를 쫓는 추격자에서 기술을 선도하는 리더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데 이어 자율주행차·친환경차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상하이(上海)차, 디이(第一)차, 둥펑(東風)차 등 중국 3대 완성차 업체를 포함해 70여개 로컬 브랜드가 참석한 올해 베이징 모터쇼에서 기술력이 상당부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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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중국 베이징 국제 전람센터에서 개막한 ‘2016 베이징 모터쇼’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굴기(?起)였다. 러에코(LeEco)의 자율주행 전기차 ‘러시’. [사진 유길용 기자]

러에코(LeEco)는 자율주행 전기차 ‘러시(LeSEE)’를 전시했다. 콘셉트 카인데, 최고 속도가 시속 209㎞에 이른다. 러에코 관계자는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를 사용해 자율주행을 수행한다”며 “최근 테슬라가 공개한 ‘모델 S’보다 성능 면에서 한 단계 앞선 차”라고 주장했다. 자율주행 모드로 전환 시 핸들은 완전히 접힌다는 설명이다. 러에코는 정보기술(IT)업체 러스왕(LeTV)의 자회사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은 친환경 자동차 라인업도 대거 선보였다. 지리(吉利)차는 한번 충전에 253㎞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 ‘디하오(帝豪)EV’을 선보였다. 한번 충전에 180㎞를 달리는 현대차 아이오닉보다 주행거리가 길다. ‘디하오EV’는 48분 만에 완충이 가능하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도 수십 종의 차량을 출품했다. 중국 국영기업인 체리(奇瑞)차도 전기차 콘셉트 모델 ‘FV2030’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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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중국 베이징 국제 전람센터에서 개막한 ‘2016 베이징 모터쇼’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굴기(?起)였다. 체리(奇瑞)차가 출품한 전기차 콘셉트카 ‘FV2030 콘셉트’. [사진 유길용 기자]

모터쇼 현장을 살펴본 한국 차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과거 ‘카피캣(copycat·모방품)’이라 눈총 받던 중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큰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은 “BYD 등 중국 현지 업체들의 전기차 분야 기술력이 놀라울 정도”라며 “합작회사 중심이었던 중국의 자동차 산업 정책이 중국 토종 기업 지원으로 바뀌면서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중국 로컬 브랜드의 ‘굴기(?起·몸을 일으킴)’는 중국의 완성차 업체들의 연구개발(R&D) 투자와 정부의 지원책이 맞아 떨어진 결과다. 지난해 중국에선 2400만대의 차량이 팔렸고, 올해는 2500만대가 예상된다. 중국 내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능력은 연간 4000만대를 넘어섰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들어 IT기업과 손잡고 스마트카를 개발 중이다. 상하이차는 알리바바가 독자개발한 자동차 사물인터넷(IoT)용 ‘윈OS’를 탑재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롱웨이 RX5’를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했다.

매년 수입의 5%를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창안차는 2010년부터 무인차 연구에 착수해 6년 만에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 창안은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 바이두(百度)와의 R&D를 협력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차는 러스왕과 함께 자율주행 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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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중국 베이징 국제 전람센터에서 개막한 ‘2016 베이징 모터쇼’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굴기(?起)였다. 중타이(衆泰)차의 전기차 ‘중타이 E200 EV’. [사진 유길용 기자]

중국 정부도 대기오염 문제 해결과 자국 브랜드 점유율 제고를 위해 친환경 자동차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지리차 ‘디하오EV’의 경우 출시가격은 24만4800위안(약 4300만원)이지만, 정부 보조금 5만5000위안(약 1000만원)과 각 지자체의 세금 혜택을 받으면 17만 위안(약 3000만원) 아래로 떨어진다. 친환경 자동차 보급 지원 정책 덕분이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2월 “중국 전기차 시장 성장에는 중국 업체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전기차 운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 중국 기업에 유리한 시장 환경 조성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 500만대 생산, 충전소 1만2000개, 충전기 480만대 건설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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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자율주행차 뿐 아니라 일반 차의 기술 수준도 올라갔다. 대부분의 신차를 해외 업체와 협력으로 개발했던 둥펑차는 최근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차의 비중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현재 시판 중인 차량 가운데 자체 개발 신차의 비중은 20%에 육박한다. 25일 오후 모터쇼에서 만난 지리차의 피터 호버리 디자인 담당 부총재는 “우리는 ‘글로벌 카’를 만들 생각은 없다. 중국의 자동차를 글로벌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로컬 브랜드는 성능과 가격 면에서 기존의 완성차 업체를 충분히 위협할 수준”이라며 “다만 디테일이 다소 떨어지고 내구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사진=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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