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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9개월 만에 없던 일로, 이름이 아까운 근속장려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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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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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경제부문기자

“근속장려금이 고졸 이하 근로자들의 조기취업을 촉진하고 장기근속을 유도해 청년고용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홍보 안 되고 신청 절차도 복잡
1400명 수혜 공언했지만 418명뿐
유사중복 알고도 시행 ‘졸속행정’

지난해 4월 정부가 ‘중소기업 근속장려금’을 도입하면서 발표한 내용이다. 근속장려금은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고졸 직원이 1년 근속할 때마다 근로자에게 100만원씩, 최대 3년 간 3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신성장·뿌리산업의 숙련근로자를 늘리고 중기의 안정적인 인력 확보를 돕는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도입 당시 고용노동부는 대상 기업의 신규채용 수요와 고졸 근로자의 근속 비율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1400명이 지원을 할 거라고 공언했다.

그런데 결과는? 약속된 연말, 이 제도는 슬그머니 폐지됐다. 야심 차게 제도를 시행한 지 9개월 만이다. 제도 도입 후 연말까지 근속장려금을 받은 근로자는 고작 418명. 공언한 수치의 29%에 불과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목표 대비 실적이 저조하고 청년취업인턴제와 중복 되는 경향이 있어 근속장려금 폐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년취업인턴제는 청년 인턴을 채용한 기업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는 정규직 전환지원금, 정규직으로 전환 후 1년 이상 근속 시 취업지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취업지원금을 주는 항목에서 근속장려금과 성격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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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뒤 사정을 살펴보면 근로장려금을 유사중복 때문에 폐지했다는 것은 다소 군색한 설명으로 들린다. 정부는 근속장려금제를 발표하기 불과 석 달 전인 지난해 1월 청년취업인턴제의 개선안을 내놨다. 당시 정부는 “미취업 청년들이 양질의 중소기업에서 보다 장기근속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고 밝혔다. 같은 부처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제도를, 비슷한 방향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유사중복이 될 줄 몰랐거나 겹칠 줄 알면서 제도를 도입했다는 건데, 어느 쪽이건 간에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폐지된 근속장려금이 이제 와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근로자 직접 지원 방식 때문이다. 청년취업인턴제가 청년을 고용한 회사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과 달리 근속장려금은 근로자에 직접 지원금을 지급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식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청년취업인턴제와 사업주 지원방식의 맹점을 지적하면서다. 사업주가 정규직 전환 후에도 인턴 당시의 낮은 임금수준을 기반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정부의 지원금이 기업의 비용절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행 사업주 지원금 중 일부를 감액해 근로자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조만간 발표될 정부의 새 청년일자리대책에도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그러나 사실 근속장려금은 이 방식 때문에 실패한 것이기도 하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작성한 ‘중소기업 근속장려금 성과분석을 통한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는 근속장려금을 받은 사람이 예상보다 적었던 이유로 ‘정책 홍보 부족과 복잡한 절차’를 꼽았다. 개인 근로자가 대상이다 보니 이 제도를 아예 모르거나 복잡해서 안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책참여도가 같다면 사업자 지원보다는 근로자 지원 방식이 효과적이지만,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려면 적극적인 홍보와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근로자 직접 지원 방식은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정부는 ‘유사중복’을 방패 삼아 비슷한 기존 정책의 진짜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데 소홀하다. 이러다 제2, 제3의 근속장려금이 나올까 걱정이다.

함승민 경제부문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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