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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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이건」대통령은 누가 뭐라든 서독의 비트부르크묘지를 방문할 모양이다. 여기엔 2천명의 독일병사가 묻혀 있으며, 그 가운데는 바펜SS의 묘가 49기 포함되어 있다.
「SS」라면 슈츠슈타펠 (Schutzstaffel), 나치스독일의 친위대다.
바로 윈헨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15분쯤가면 다카우(Dachau)라는 동네가 나온다. 이름은 동네지만, 실은 「집단수용소」로 서독에선 마지막 남은 「악명소」다. 1933년 건립.
아직 철조망이 그대로 둘러있고,그 안에 들어서면 시골 국민학교 교사같은 단층건물이 나란히 두채 서있다. 수용소 모델하우스다.
수용소의 면적은 무려 17만평방m로, 지금은 황량한 벌판에 수용소자리만 60여개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가 바로 SS에 의해 3만5천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역사적현장이였다.
관광차들이 밀려들자 적십자 완장을 단 노인들이 자루를 내민다. 주거비를 받는다.
SS사무실이였던 건물에 들어서면 대문짝만한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히틀러」가 뮌헨에서 궐기할 때부터 유대인들이 장작개비처럼 주검으로 쌓일 때까지의 기록이다.
군데군데에선·노인들이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웅변아닌 설득인 것처럼 보였다. 자원봉사로 나온 노인들이다.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무지가아니라 무관심이오. 요즘 젊은이들의 무관심 말이오」
한 노인은 그야말로 도시락 싸들고 이곳에 나온 연유를 거의 히스테릭하게 설명했다.
마침 코스 가운데의 소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상영시간이 되어 들어갔다. 독일어 더빙시간이어서 독일 중학생 60여명이 관광객들과 합석했다. 오전 11시쯤.
처음부터 끝까지 숨이 콱콱 막히는 SS의 공포와 살륙장면들이었다. 사람은, 아니 유대인들은 SS앞에선 돌멩이만도 못한 벌레들이었다.
빗물이 줄줄 흐르는것 같은 낡은필름이 주는 충격은 언제 보아도 새로울것 같았다.
상영이 끝나고 밝은불이 켜지자, 잠시의 정적. 이때 중학생들의 폭소가 터졌다. 이 무슨 해프닝인가. 몇몇 학생이 깊은잠에 빠져 영화가 끝난줄도 모르고 있었다. 오늘의 독일, 젊은 세대들에겐 유대인 집단수용소의 기록영화도 졸음을 불러들일만큼 충격밖인것 같았다. 차라리 「수용소」유적지률 없애야 한다는 소리없는 여론도 있다는 얘기다.
비독일인의 눈엔 그것도 하나의충격이었다. 수용소의 출구에 붙어있는 「산타야나」(미 철학음)의 경구가 인상적이였다. 『과거를 기억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하도록 심판받을 것이다』 【뮌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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