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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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블라가 디미트로바(불가리아 시인, 최권진 번역) '물' 전문

많은 물이 흘렀다.
맑은 물과 흐린 물과 핏물이.
여러 종류의 물들이.
하지만 황금 물만은 오지 않았다.
세월의 연안에서 새벽녘부터 저녁녘까지
혼자서 얼마나 그것을 기다렸던가.
이제 냇물은 기억 속에서
발원지를 향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물들이 석양에 노랗게 물든다.
완전한 황금빛!
그것을 정교한 저울에 무게를 달아본다:
텅빈 큰 두 줌의 손이
가득 넘친다



소피아! 그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불가리아의 수도에서 열린 '한국 불가리아 문학의 밤'에서 만난 시다. 키릴 문자를 가진 민족, 아직도 발칸 반도의 정치사가 남긴 상흔은 도처에 경제 낙후의 흔적을 보인다. 하지만 발원지의 완전한 황금빛 원형성, '텅빈 손에 넘치는 그 황금빛'을 보라. 이상하게도 불교적 전율이 온다. 여기 처음 소개한다.

문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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