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임 일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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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대령)이 21일 6·25전쟁때 함경북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임병근 일병의 조카(임현식)에게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세계 2대 동계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1950.11.27.~12.11)에 참전했다 전사한 국군 유해가 66년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1일 고 임병근 일병의 유해를 부산에 살고 있는 큰조카 임현식씨에게 전달했다.

임 일병의 유해는 미국의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PC)가 북한에서 발굴한 유해중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유해라며 지난 2012년 넘겨준 유해 12구중 4년간 유전자 감식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영하 40도를 밑도는 날씨속에 치열한 전투를 치르다 사망한 뒤 하와이로 건너갔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가족을 찾는데 4년이란 시간이 흐른 셈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2012년 유해 봉환시 이갑수, 김용수 일병 등 2명의 유해는 쉽게 신원이 확인돼 봉환직후 가족들의 품에 유해를 인도했다"며 "나머지 10분의 유해에 대한 가족들의 유전자 채취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1930년 5월 5일생인 고인은 6ㆍ25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8월 스무 살의 나이에 미 7사단 카투사로 입대해 같은 해 12월 6일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함경남도에 있는 장진호 지역은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로 한국의 지붕이라 불리는 개마고원 일대의 산악지역이다.

당시 미 해병1사단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1만5,000명의 병력으로 중공군 13만명과 맞서 17일간 사투를 벌였다. 그 덕분에 군인과 민간인 20만명이 남쪽으로 탈출한 흥남 철수작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미군 600여명이 전사하고, 부상 및 실종 3,000여 명, 동상환자 3,7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인명피해를 냈다. 그래서 미군 전사(戰史)에는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 있다.

임 일병의 유해는 이후 50년간 차디찬 장진의 야산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의 합의에 따라 미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PAC)’가 2000년부터 북한지역에서 유해발굴에 나섰다. JPAC은 2001년 북한에서 발굴한 유해를 판문점을 거쳐 하와이에 있는 본부로 옮겼다. 정밀 감식결과 임 일병을 포함한 12구의 유해가 아시아계로 확인됐다. 한미 양국은 이들 유해를 모두 국군 전사자로 결론짓고 2012년 5월 국내로 봉환했다.

정용수 기자 jeong.y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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