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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만기전역 3명뿐 … 당 대표의 무덤, 집단지도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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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봉숭아학당’이 된 건 유래가 꽤 깊다. 2번의 대선 승리가 그 그늘을 가렸을 뿐이다.

최고위원회가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된 건 2002년 5월(당시엔 한나라당)이다.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회창 총재를 향해 의원들이 “제왕적 총재는 더 이상 안 된다” “당권과 대권(大權)을 분리하자”고 끈질기게 요구한 결과다. 당시 이런 주장을 편 쇄신파에는 재선의 박근혜 대통령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정당민주화를 촉구하며 탈당, 한국미래연합이란 당을 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쟁취한 집단지도체제형 최고위원회의 장점이 그 뒤론 실종됐다.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집단지도체제라고 하면 중국처럼 효율적인 집단 지성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최고위, 당 안팎서 어떻게 보나
“계파 주도권 다툼 장소로 전락”
공천갈등 해소는커녕 증폭시켜

새누리당 최고위는 거꾸로 리더십을 약화시킬 수 있는 집단지도체제의 단점만 끊임없이 되풀이해 보였다. 제도가 도입된 뒤 대표최고위원(최고위원들 중 1위라는 뜻. 이하 ‘대표’)은 모두 10명인데, 이 중 2년 임기를 채운 사람은 단 3명이다. ▶박근혜 대표 ▶강재섭 대표 ▶황우여 대표다. 그나마 황 대표는 박근혜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관리형 당대표’였고, 강 대표는 2007년 이명박-박근혜 대선후보 경선에 휘말린 ‘위기의 대표’였다. 결국 온전한 의미의 당 대표는 박 대통령 한 명뿐이었다.

왜 이런 실패가 되풀이되고 있는 걸까.

당 안팎의 진단은 한 방향으로 모아진다. “최고위가 계파의 주도권 다툼을 위한 장(場)이 돼버렸기 때문”(박 이사장), “각 계파의 아바타들이 모여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 한 번 잡는 것이 전부인 회의체로 전락했기 때문”(김세연 의원)이라는 진단이다.

직전 최고위의 경우 비박근혜계인 김무성 의원이 대표가 됐지만 위원회 9명의 구성은 비박 2(김무성·김을동)-중립 1(김정훈)-친박 6(원유철·서청원·김태호·이인제·이정현·안대희)이었다. 그러다 보니 논의는 늘 싸움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4·13 총선을 앞둔 공천 갈등이 최고위를 거치면 해소되기는커녕 더 증폭됐다.

2011년 친이명박계 홍준표 대표 때는 재·보궐 선거에서 지자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단체로 사표를 던져 지도부 자체를 붕괴시킨 일도 있었다. 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고, 그 위원장을 박 대통령이 맡았다. 계파 간 신경전이 당 최고의결기구라는 최고위를 좌지우지했던 사례들이다.

2008년 한나라당 시절 여당이 된 이후 당·청 관계의 불평등이 당 최고위의 정상 운영에 걸림돌이 돼왔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지난해 말 쟁점법안 협상을 하려고 여야 지도부를 부른 일이 있다.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원유철 원내대표만 청와대와 조율된 내용을 알고 있었고, 김무성 대표는 정보가 하나도 없이 들어왔다가 회의에서 깜짝 놀라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여당의 역할이 ‘청와대 보좌’에 한정되면서 집단지도체제가 무력화한 경우다.

| “정치만 열 올리는 최고위 없애고
미국처럼 의회 중심 원내대표단만”
당 대표·최고위 선거 분리도 대안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도 최고위원회의 수술을 얘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계파끼리 나눠 먹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집단지도체제는 김무성 체제에서 그 문제점의 끝을 드러내 수명을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최소한 야당처럼 우리도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를 분리해 대표에게 당을 개혁할 힘을 좀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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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1위는 대표, 2~5위는 최고위원(여성 1명은 필수, 지명직은 별도)이 된다. 이러다 보니 대표와 반대 계파 출신인 2위 최고위원은 대표 견제에만 열을 올리게 된다. 대표-최고위원 선거를 분리하자는 건 이런 폐해를 줄여보자는 아이디어다. 더 근본적인 수술론도 제기된다.

김세연 의원은 “당 최고위를 없애고 미국처럼 의회 중심의 원내정당화를 해야 한다”며 “정치에만 열을 올리는 최고위를 없애고 의정활동을 이끄는 원내대표단만 두는 것이 당의 독립성을 더 키워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최고위 폐지가 정 힘들다면 최소한 각 정파의 수장들이 직접 참여해 실권을 갖고 논의하는 소수 정예 최고위를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궁욱·김경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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