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원 정책 왜 겉도나 했더니 … 부처마다 다른 ‘자영업자’ 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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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중기청)·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국가보훈처 등 정부 부처가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융자 사업이나 사업의 초기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 중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여야 정치권이 ‘자영업자 대상 10%대 중금리 대출 확대’ ‘자영업자 부채 경감과 골목상권 보호 강화’ 같은 자영업자 대상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통계청 기준으론 대리기사도 포함
중기청 분류 의사·변호사까지 해당
선심 쓰듯이 지원책 내놓기 전에
명확한 정의와 통계 먼저 마련하길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아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누가 자영업자인가’이다. 놀랍게도 자영업자에 대한 뚜렷한 법률적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일반적인 통념을 바탕으로 자영업자를 구분한다. 그런데 이게 부처마다도 다르다. 현재 정부 기관 중 자영업자 관련 통계를 다루는 곳은 통계청·중기청·국세청 세 곳이다. 통계청은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에서, 국세청은 사업자 현황을 통해 자영업자 수를 발표한다. 중기청은 이와 별도로 ‘소상공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영업자를 파악한다.

통계청의 자영업자는 ‘근로자를 1인 이상 고용하거나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자기 혼자 또는 1인 이상 파트너(무급으로 일하는 가족 포함)와 함께 사업하는 사람’이다. 고용동향의 항목인 만큼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사업자등록과는 무관하다. 무등록 사업자인 노점상이나 일부 대리운전 기사, 농부도 자영업자로 잡힌다는 얘기다.

국세청에서 나오는 자영업자의 기준은 더 단순하다. 납세 대상 사업자 중 법인을 제외한 개인사업자다. 통계청 정의에서 무등록 사업자는 빠지지만 부동산업이나 임대업자가 대거 포함된다. 통계청의 자영업자는 560만명, 국세청의 개인사업자는 583만명이다. 중기청 방식의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중소기업 가운데 직원 수 5인(제조·운송·광업은 10인) 미만인 법인 또는 개인사업자를 말한다. ‘작은 사업자’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라는 것 외에는 매출 제한이 없어 일반적으로 자영업자로 보기 어려운 의사나 변호사 등도 소상공인에 들어간다. 중기청도 이를 의식해 지난해 7월 ‘소상공인·전통시장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하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상이한 개념인데도 혼용되고 있어 소상공인 범위를 개편해 정책대상을 영세 사업자 중심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바뀐 것은 없다.

모호한 정의가 일상에는 큰 지장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정책 지원의 ‘대상’이 될 때는 문제가 된다. 예컨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분식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통계청 조사상 자영업자지만 중기청의 자영업자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책의 혜택이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또 이를 방지하려다 보면 ‘고소득 자영업자’ ‘영세 자영업자’ ‘생계형 자영업자’ 등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이렇게 따로 범위를 정하고 규정을 만들 때마다 행정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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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경제부문 기자

반퇴시대가 도래한 후 퇴직자들이 대거 자영업으로 진출하면서 ‘자영업자 위기’가 조명되는 시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다만 받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선심성 정책을 내놓기 전에 명확한 정의와 통계를 만드는 게 먼저다.

함승민 경제부문 기자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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