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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거품과 함께…스톡옵션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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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스톡옵션(주식매입청구권)의 황금기는 끝났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0일 미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스톡옵션 폐지 선언으로 수천명의 종업원들을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렸던 하이테크 기업의 전형적인 성공스토리에 조종(弔鐘)이 울렸다며 이같이 표현했다.

미국식 신경제(New Economy)의 일등공신이자 미국식 경영의 상징이었던 스톡옵션 제도가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IT기업인 MS는 지난 8일 종업원들에게 성과급 형태로 주던 스톡옵션 제도를 없애는 대신 자사주를 직접 주겠다고 발표했다.

MS의 이번 결정은 다른 기업들에도 확산될 전망이다. 스톡옵션제가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회사 돈이 빠져나간다는 불만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커져왔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 자동차그룹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9일 스톡옵션을 없애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다임러는 대신 회사 주가와 연동하는 방식의 보너스 지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경쟁사인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GM)도 다임러의 뒤를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최근 스톡옵션제를 고치거나 없애는 기업이 늘기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IT업체를 포함해 2백16개 미국 업체가 스톡옵션을 비용처리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수십개의 회사가 현재 스톡옵션제에서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estricted stock)제로 보상 시스템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스톡옵션 뭐가 문제인가=스톡옵션은 1990년대 미국경제와 함께 증시가 계속 호황을 보이면서 번져가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 다른 기업들도 유행처럼 이를 도입했다.

IT기업을 중심으로 거품이 한창이던 그 시절 스톡옵션은 적은 비용으로 직원들에게 보상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주가는 계속 올라갔고 스톡옵션을 행사한 직원들은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는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경기침체와 더불어 증시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스톡옵션은 무용지물로 변했다. MS도 그동안 시장가격이 스톡옵션 행사가격보다 낮아 옵션을 현실화할 수 있는 직원이 적었다고 밝혔다.

미 엔론이나 월드컴의 경우처럼 기업회계 부정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주주들로부터 항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경영진이 주가를 높여 스톡옵션을 챙기기 위해 회계조작의 유혹을 받기 쉽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칼 레빈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부분 미국 경영진들의 보수는 스톡옵션에 상당히 의존한다"며 "따라서 경영자들은 스톡옵션을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 현행 회계규정을 '최대한' 이용해 재무제표를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높인다"고 지적했다.

스톡옵션 때문에 경영진이 지나치게 단기 실적에 연연하게 되는 경향도 문제였다. 경영자들이 장기적인 수익과 경쟁력 강화보다 언론 플레이나 외부 활동에 치중하거나 경영자 본연의 활동에 소홀하게 되는 폐단이 생겼다.

분기별 실적이 발표되면 즉각적으로 시장의 평가가 나온다는 점도 경영자들을 단기 실적에 치중하게 만들었다.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장기간에 걸친 투자가 필요한 광통신 사업부문을 소홀히 해서 2000년 경쟁업체인 노텔에 추월당했다.

당연히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졌다. 방만하게 스톡옵션을 주다 보니 옵션 행사에 따라 기업 실적이 좌우될 정도로 기업 손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스톡옵션은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됐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지난해 "스톡옵션은 형편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90년대 산업계를 휩쓴 전염성 강한 대표적인 욕망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새로운 보상 체계는= MS가 스톡옵션 대신 주겠다는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이란 주식을 받은 지 5년 후에야 팔 수 있는 조건부 주식이다.

임직원들은 5년 뒤 회사 주식가치가 많이 올라야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임직원에 대한 보상을 장기간의 회사실적과 바로 연결짓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WSJ는 그러나 직원들에게 줄 돈은 넉넉하지 않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작은 기업들에는 스톡옵션제도가 여전히 가치있는 방법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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