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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는 박사라야만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학이 「상아탑」이라고 일컬어지던 때가 있었다. 세속의 잡사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고고한 학문과 진리의 탐구에만 전념하며 이상을 향해 매진하는, 다분히 지고지순한 이미지를 풍기는 말이다.
요즈음도 그런 표현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외부에서 보는 대학이 「상아탑」 이란 표현에 딱이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상의 변화에 아무런 생각이나 비판, 또는 적응을 외면하고 먼지 낀 책에만 몰두할 수도 없을 것이며 그런 학문 자세가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둘이 마시는 공기가 현실이며 그들이 소속된 가정과 학교가 곧 현실과 밀접한 관계 아래 존재하므로 격리된 공간에서 고고한 생각만을 동떨어지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이나 경제 분야를 연구하는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오히려 전공 분야를 선도해야 할 인재라는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현실의 진전을 잘 통찰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향학이라는 낱말의 개념 자체도 구태의연하게 책 속에 파묻히는 고정관념을 깨고 외부의 변화를 학문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적 변화와 시대적 요청에 따라 우리 대학도 과감히 문호를 개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 한가지 방법이 실무 정보가 풍부하고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을 학교가 받아 들여 강단에 서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노련한 실무 경험자들이 학생과 교수들과 만나 그 체험을 얘기하고 함께 토론함으로써 이론에만 치우친 강의 내용을 보완하고 현실에 접목시켜 보다더 충실하고 쓸모 있는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부 대학이 큰 기업의 고위 경영자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학생들과 만나게 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게 학문적 이론과 현실적 경험의 보완관계를 지속·발전시키려면 우선 대학 교수 자격을 학위 소지자로만 제한하고 있는 현실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 교육 관계 법령 중에 대학 교수는 박사라야만 한다는 조항은 없으나 현실은 그렇게 제한을 두고 있다.
학위란 어느 분야 또는 어떤 테마에 대한 개인의 업적일 뿐 학문적 깊이나 교수로서의 총체적인 자격을 부여하는 척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의 경우 이미 대학 교수와 학위는 전혀 별개의 것이며, 따라서 학위 없는 교수 밑에 박사 조교가 수명씩 일하고 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개 박사」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그쪽에선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라도 「프로페서」라고 불리는 것을 훨씬 명예스럽게 생각하는 풍토만 보아도 양자의 입장과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보아도 최근 대학 설치 기준(문부성령)을 일부 고쳐 현재의 대학교수 자격이 「박사 학위를 가진자, 연구 업적이 이에 준하는 자」로 돼 있는 것을 완화하여 민간인 등용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운영상의 탄력성을 갖도록 한바 있다. 즉 「전공 분야에 관해 특히 우수한 지식 또는 경험을 갖고, 연구상의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도 대학교수가 될 수 있게 했다.
학력이나 학위 이외에도 특정 분야의 일에 대한 실적도 교수 임용의 평가 기준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우리의 경우 교수자격인정령을 보면 학력·연구 업적·교육 경력의 유무가 중심으로 돼 있어 대학이 외부에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싶어도 이 기준이 장애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대학의 학생수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교수의 충원은 부진하여 대부분의 대학이 교수 태부족 상태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 채용의 기준을 학위에만 집착한다면 실력이 없더라도 해외에서 적당히 학위만 따온 사람만으로 강단은 채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이 현실에 뿌리를 내린 내실있는 교육을 실시하려면 민간 부문에서 오랜 연구와 경험을 쌓은 사람들에게도 문호를 과감히 개방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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