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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돌파는 대화·소통의 열린 리더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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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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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국회의원 선거는 우리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절차이지만 그 과정은 극히 혼란스럽고 무절제하며, 비효율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실제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은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에서 우리는 정부·여당에 대한 준엄한 경고와 함께 야당에 대한 절제된 격려와 기대가 섞인 분명한 민의를 읽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 체제는 아니지만 인류가 경험해 본 어느 것보다 ‘덜 형편없는’ 체제라고 한 윈스턴 처칠의 명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였다.

어쨌든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선거 결과에 비친 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초심의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 먼저 정부와 여당은 여소야대 정국 돌파를 위해 소통과 대화를 중시하는 열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다수의 야당을 국정운영의 걸림돌이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대하는 정치 풍토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고위층과 야당 지도층 간의 공식·비공식 대화 채널을 넓히는 것은 필수적이다. 물론 이에 앞서 정부와 여당 간 소통 강화를 통해 국정우선순위와 정책 집행에 관한 시각을 같이하기 위한 대통령과 여당 수뇌부, 그리고 당정 간의 공식·비공식 소통과 대화 채널이 활성화돼야 한다.

정부의 대국민 소통과 설득 노력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여소야대 정국하에선 필수불가결하다. 국민 여론의 힘이 뒷받침될 때 다수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 각 부처 장관의 수시 기자회견, 분야별 논설위원과 취재 데스크 책임자에 이르는 주요 언론인과의 각종 간담회 개최와 함께 정책 담당부처 장차관뿐 아니라 실무책임자까지 적극적인 ‘정부정책 대변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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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리고 정부와 국민의 소통 과정에 정부가 출연 혹은 지원하고 있는 주요 국책연구원의 적극적 참여도 필요하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분야별 정책과 개혁의 내용과 필요성을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와 외국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대국민 설득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개혁 분야일수록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국정 파트너로서의 모습을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을 공약했다. 이제부터는 경제민주화란 추상적 수사(修辭) 차원에서 벗어나 분야별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 금융, 노동, 교육 4대 개혁 과제에 대한 입장과 필요한 부문에 대한 구체적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지원을 세종시에 설치(필자의 1월 25일자 본 칼럼 참조)하겠다고 한 공약을 지키는 것은 행정 효율성 제고뿐 아니라 행정부와의 신뢰 구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의당은 국정운영에 합리적 균형추 역할을 해달라는 뜻이 담긴 국민의 지지와 격려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선거 후 말한 대로 국민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판단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데 국민의당이 앞장서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당의 안철수 대표는 우리나라 정치지도자 중 현재 빠른 속도로 진행 중에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내용과 그 정책적 함축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경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당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내다보는 산업과 과학·기술 분야뿐 아니라 교육, 노동, 행정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필요한 폭넓은 개혁에 앞장서볼 만하지 않은가.

국회의원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피치와 무디스 등 신용등급회사와 일부 국제 투자은행은 여소야대 정국이 한국의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여당과 함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이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지금 세계 경제는 과거 어느 때에도 경험하지 못한 경기 회복의 불확실성과 함께 현재의 경기 침체가 아예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게다가 최근까지 세계 경제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온 중국의 성장둔화에 따른 충격에 더해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과 양적완화의 지속으로 국제 외환 및 금융 시장의 불안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향한 기업 간, 지역 간, 국가 간 경쟁은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

이렇게 어렵고 불확실한 대외경제 여건 속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외 기업과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여당의 흔들림 없는 리더십과 국정운영에 능동적으로 협조하는 야당의 모습이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