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도 포기한 한화의 어두운 현실

중앙일보

입력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표류하고 있다. 꼴찌(2승11패, 승률 0.154)로 추락한 것도 모자라 내분에 휩싸여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한화 구단은 '고바야시 세이지(58) 투수코치가 지난 15일 코치직을 사퇴했다'고 이틀이 지난 17일 밝혔다. 고바야시 코치는 지난 13일 2군으로 강등됐다. 당시 김성근(74) 한화 감독은 "투수들이 볼넷을 많이 내줘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고바야시 코치는 이에 불복하고 이틀 만에 구단에 사의를 전한 뒤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고바야시 코치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2005년부터 7년간 투수코치를 지내며 4번이나 센트럴리그 우승에 공헌한 베테랑이다. 지난해 11월 한화에 합류한 뒤 한화 마운드를 탄탄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됐지만 특별한 성과 없이 개막하자마자 팀을 떠났다. 한화는 지난해에도 니시모토 다카시 투수코치가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김 감독은 평소 일본인 코치를 중용했지만 이젠 그들과도 등을 돌리고 있다. 김 감독의 파격적 투수운용에 일본인 코치들도 반기를 든 것이다.

김 감독은 "야구는 감독이 한다"고 말하는 리더다. 보직 결정, 등판 간격 조정 등 다른 팀이라면 코치가 할 일도 김 감독은 직접 결정한다. 게다가 연투가 잦은 마운드 운용을 하기 때문에 투수 분업화가 철저한 일본 야구에서 몸담았던 코치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쌍방울(1996~99년)과 SK(2007~11년)에서 불펜 투수들을 쏟아붓는 '벌떼 마운드'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올 시즌엔 이런 전략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로저스·안영명·배영수·심수창 등 주축 투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빠지면서 시즌 초부터 비상 체제로 투수진을 운용하고 있다. 선발 투수들이 흔들리면 곧바로 마운드에서 내리고, 불펜투수들이 벌떼처럼 등판하는 전략이다. 마무리 정우람을 제외한 대다수 투수들이 3~4일 연투를 밥 먹듯 했다.

지난 14일에는 1회 구원투수로 등장한 송창식이 4와3분의2이닝 동안 무려 12점을 내줄 때까지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았다. 벌을 주는 것처럼 계속 던지게 한다는 '벌투(罰投)' 논란까지 일었다. 힘은 힘대로 쓰고 이기진 못하면서 선수들도 힘들고, 코치도 힘들고, 팬들도 힘든 야구가 계속되고 있다. 한화의 투수력은 개막 한 달도 되기 전에 벌써 바닥난 상태다. 지난 17일 LG전까지 5연패를 당했다. 감독과 코치진-선수단 사이에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다. 한화 출신의 한 코치는 "투수는 자기가 언제 나갈지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큰 문제"라며 "밖에서 봐도 선수들 의욕이 크게 떨어져 있다. 김 감독의 리더십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보다 암울한 건 한화의 미래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한화는 지난해 3명(송은범·배영수·권혁), 올해 2명(정우람·심수창)을 영입했다. 비싼 선수들이 많아져 한화 선수 57명의 연봉은 총 102억1000만원(10개 구단 중 1위)까지 치솟았다. FA 보상선수를 다른 팀에 내주느라 한화는 젊은 유망주들을 잃었다. 등록인원 65명 안에 들지 못한 최영환은 육성선수(연습생)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롯데로 떠났다. 허유강·최우석은 훈련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팀을 나갔다. 한화는 퓨처스리그(2군)에서도 최하위(1무9패)로 쳐졌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반격의 기회는 남아있다. 그러나 이런 팀 분위기로는 74세의 노장 김성근 감독이 시즌을 마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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