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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혐오한다고 투표 안 하면 더 바뀌는 게 없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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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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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3일)은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날입니다. 이번 총선은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거란 예상이 많습니다. 중앙일보의 화제 기획 ‘보이스택싱’이 서울 시내 주요 캠퍼스를 돌아봤습니다. 보이스택싱이 태운 9명의 대학생 가운데 7명이 “꼭 투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오늘 밤 20대의 표심은 어느 당의 손을 들어줄까요. 누가 승리하든 새로 꾸려질 국회가 청춘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면 좋겠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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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역→신설동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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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11일 오전 10시30분. 보이스택싱 ‘캠퍼스 편’ 취재를 위해 신촌과 홍대입구를 샅샅이 훑었다. 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등이 밀집해 있는 대학가였지만 ‘청춘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빈차 운행을 1시간 이상 반복한 끝에 손을 흔드는 앳된 얼굴의 두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입구역에서 신촌역으로 가던 길에서였다. 인근 대학 학생인 강세린(22)씨와 장수인(23)씨가 승차했다.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보이스택싱
캠퍼스 민심을 듣다

“아저씨, 신설동 로터리요.” 아, 아, 아, 아저씨라…. 보이스택싱을 시작한 지 석 달째. “기사 아저씨” 호칭은 꽤 익숙해졌지만 어째 매번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 기분. 내 나이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 어쨌든 두 여대생에게 급한 본론부터 꺼냈다.

“이번 총선 관련 20대 청년층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온 중앙일보 보이스택싱이에요. 인터뷰 가능할까요. 목적지까지는 공짜로 모셔드릴게요.”

기자의 말에 장씨는 시큰둥한 표정. 다행히 강씨는 반색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하. 기자 아저씨구나. 저는 투표도 투표지만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싹 바뀌면 좋겠어요. 국민 세금 가지고 자기들 좋은 일만 하고 그러잖아요. 믿음도 안 가고요. 만날 말만 반성한다 하지만 글쎄요…. 전 사실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처음이거든요. 하지만 투표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어요.”(강세린)


#고대병원→정릉→대학로→성균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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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동 로터리에 강씨 일행을 내려준 시간은 낮 12시30분이었다. 인근 고려대로 방향을 돌렸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려대 이과대 1학년 김우철(19)씨가 고대병원 앞에서 보이스택싱에 올랐다. 정릉으로 가는 길 양옆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 언덕길을 오르며 총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투표하시나요.
“이번이 생애 첫 투표예요. 정치를 혐오한다고 해서 투표를 안 한다면 더 바뀌는 게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바빠도 투표는 꼭 할 거예요.”
어떤 국회가 되면 좋을까요.
“싸우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잘하지는 못해도 못하지는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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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뒤 대학로에서 승차한 이혜나(20)씨는 성균관대 사회과학대에서 공부 중이었다. 이씨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투표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에서도 이번 20대 총선에서 적극적 투표 의향을 밝힌 20대 유권자가 19대 국회의원 선거(35.9%)와 비교해 약 19.4%포인트 늘어난 55.3%로 조사됐다. 정치 무관심층이라던 20대 유권자들 사이에 ‘투표 반란’ 조짐이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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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안 한다는 친구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고 얘기하는 친구가 있을 정도예요. 시험 기간이지만 투표하겠다는 친구들도 제 주변에 많아요.”

이씨에게는 이번이 첫 선거다. 그에게 20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선거철이라고 공약을 막 던지는 분이 많아요. 제 자취방이 있는 선거구(종로구)에는 오세훈(새누리당)·정세균(더민주) 후보 등 거물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대학생을 위한 공약은 별로 없더라고요. 자취하는 학생들의 주거불안 문제도 신경 써 주셨으면 해요.”


#대학로→한성대→이대입구→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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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30분쯤 승차한 곽지은(20)씨는 휴가 복귀하는 남자친구를 배웅하고 오는 길이었다. 남자친구와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택시에 올랐다. 다음 휴가까지의 짧은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 목소리에 뚝뚝 묻어났다.

투표는 당연히 합니다. 권리잖아요. 이번에 뽑히는 국회의원들은 제발 ‘갑질’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거 때만 나타나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평상시에도 ‘을’의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1시간쯤 뒤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연세대 중문과 3학년 유지원(23)씨를 만났다. 유씨는 “제발 국민들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줬으면 한다”며 “소통이 안 되는 문제가 가장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낙성대→매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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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서울대로 향했다. 자연과학대에서 농생명과학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전주대 4학년 김지성(27)씨가 보이스택싱을 보고 손을 들었다. 정보시스템학 전공인 김씨는 서울대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국회를 원하나요.
“노력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대학생들은 힘들게 아르바이트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잖아요.”
국회의원들은 역할만큼 대접을 받고 있나요.
“글쎄요. 좀 과하게 받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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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지하철역에 내려준 뒤 다시 서울대 후문으로 돌아왔다. 이 대학 신입생 윤성월(19)씨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는 급한 약속 때문에 매봉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퇴근길 정체가 시작될 무렵인 5시반쯤이었다. 남부순환로가 차들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투표할 때 어떤 기준으로 지지 정당을 정하나요.
“후보자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 보고 정할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선거가 누구를 뽑아야 ‘뒤통수’를 덜 아프게 맞을까를 고민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정치권이 어쨌든 점진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20대 국회 전망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투표 다음 날이 시험인데요.
“그래도 할 건 해야죠. 전날 공부 다 해놓고 투표하고 와서 푹 잔 다음에 시험 보러 갈 계획입니다.”


#숙명여대→동작세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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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오후 7시쯤 숙명여대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좁은 도로에서 오지현(22)씨가 탑승했다. 교육학과에 다니는 오씨는 현재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그에게 지지 후보를 정했는지 물었다.

아직요.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습니다. 전과자는 안 뽑을 거예요. 특히 민주화운동 당시의 전과가 아닌 사기죄 이런 일에 연루된 후보자가 있던데 최소한 그런 사람들은 걸러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씨는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송모(26)씨의 정부서울청사 침입 사건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제 주변 친구들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누군가 한 명은 부정한 방법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다들 머릿속에 있는 거겠죠. 부디 이번에 뽑힐 의원님들은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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