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더해가는 미-일무역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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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워싱턴이 동경을 향해 뿜어대는 시장개방 압력은 집중포화에 비유할만한 강도를 가진 것이다. 상·하 양원이 각각 대일 보복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상원재정위원회는 90일 안에 「레이건」행정부가 일본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일본상품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하라는 법안까지 채택했다. 통상 정책의 수문장격인 국무성도 2일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친 후 『일본은 미국 시장만큼 개방해야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같은 공식행동의 뒤에서는 훨씬 더 독기 어린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 내 보호주의의 본산인 의회 쪽에서는 「오닐」 하원의장이 「맨스필드」 주일 미국대사에게 『일본이 양보하지 않으면 혼날 줄 알라』는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나까소네」 일수상에게 전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산업의 의견을 대변하는 비즈니스 위크지는 『일본의 무역흑자는 경쟁해서 얻은 게 아니고 약탈해간 것』이라고 비난했고 미국 통상대표를 지낸 「브로크」씨는 일본이 해외에 대량수출 하면서 자기시장은 폐쇄하는 습성이 「도여근성」서 나온 것이라는 혹독한 용어를 썼다.
이처럼 격화된 미국 내의 대일 감정은 2차대전 이래 가장 악화된 상태라고 미국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미국 내 최근 분위기는 지금까지 자유무역원칙을 옹호해 온 정치인들까지 필요하면 대일 보복조치를 취해야된다는 여론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경향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통상을 하고있는 모든 나라가 우려할만한 것이다.
그 한 예가 하원 상무위원장 「존·댄포드」 의원이다. 『이제 단호한 행동을 취할 때가 왔다』며 보복론을 옹호하고있는 그는 지난 2월 자기를 찾아온 일본 의창들과의 면담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는 최근 상원 보복결의안 토론에서 『무역전쟁은 시작되었다. 다음에는 실탄 (법안) 을 장진해서 쏘겠다』 는 자극적인 발언을 했다.
분위기의 변화는 행정부 쪽에서도 엿보인다. 일본을 통상 대상으로서뿐 아니라 전략적,정치적 맹방으로도 평가해야되는 행정부 쪽에서는 대개 의회 폭의 보호주의 경향을 무마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행정부, 특히 통상관계 부처 고위관리들이 의회의 반일움직임을 부채질한 인상이 짙다.
그러다가 의회 쪽 반응이 너무 거세자 행정부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하고있다.
미국 쪽의 물만은 지금까지의 오랜 대일 협상을 통해 일본이 원칙에는 양보를 해놓고 실무선에서 교묘히 이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여러 번 겪어 온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번에 말썽의 초점이 된 일본전신전화회사의 수주규정개정에 관한 협상에서도 미국이 약간의 양보를 얻어냈지만 워싱턴의 통상관리들은 『아직 두고봐야지 현재로선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고 자체평가하고 있다.
미국 쪽의 반발이 거세기는 했지만 일본에 대한 보복조치가 임박한 것은 아니다. 상원과 하원에서 채택한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는 「의사전달」의 형식을 띤 것이다. 상원 재무위가 통과시킨 보복법안은 구속력이 있는 것이지만 의회중신들이 당분간 이를 본회의에 상정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2일에 발표된 국무성성명도 한편으로는 일본시장의 개방을 촉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보복조치를 취하면 일본에 타격을 주는 만큼 미국도 타격을 받는다』고 경고, 미국 내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 책임이 일본 즉 시장폐쇄에 있든, 미국 측 달러강세에 있든 간에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한 미일 통상관계는 계속 충돌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국 내 보호주의세력은 강화되게 마련인데 그 피해가 한국 등 소규모 통상국에 미칠 것을 경계해야 될 것 같다.【워싱턴= 장두성 특파원】

<동경의 대응-아베외상 보내 분위기 무마 노려 "불균형은 달러 강세 탓"일부선 미에 반발>
미일무역마찰은 이제 마찰의 단계를 넘어 열전에 돌입한 느낌이다.
미의회를 중심으로 한 대일 불만이 일본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있다.
일본정부는 오는 9일 경제각료회의를 열어 시장개방을 중심한 대외경제정책을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넘은 미의회 및 행정부의 대일 공세에 놀라 우선 당장 문제가 된 전기통신기분야에 대해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시장을 개방하겠다』고 「시거」 미특사에게 답장을 들려 보낸 뒤 후속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정부는 특히 전기통신기분야에 대한 개방약속에도 불구하고 미의회가 수그러지지 않고 보복법안을 상원재무위에서 통과시킨 사실을 중시하고 4일 외무성 경제담당심의관을 미국에 급히 파견하는 한편 13일에는 「아베」(안배진대낭)외상이 직접 「슐츠」 미국방장관을 찾아가 무마공작을 펼 예정이다.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83년의 1백90억 달러에서 84년에는 3백70억 달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 된다면 85년에는 5백50억 달러로 적자폭이 늘어나리란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대일 무역적자의 확대가 미국 내에 일본에 의한 시장 지배와 실업의 불만을 가중시켜 의회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일본이 이 같은 미국의 입장을 알면서도 그 동안 시장개방에 인색했다는데 있다.
미상원재무위 국제무역소위 「댄포드」 위원장과 「올머」 상무차관은 최근 열린 대일 무역관계 공청회에서 각각 51회, 14회나 일본을 방문했다고 답변했다가 『그렇게 열심히 일본을 찾아가서 얻은 성과가 무엇이냐』는 추궁과 힐난을 받은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있다.
미국이 일본을 어떤 눈으로 보고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얘기다.
일본의 대미승용차 수출 자율규제조치는 일본정부가 크게 생색을 내려한 것이 있지만 이 같은 미국 내의 분위기를 모른 어리석은 장난이었다는 것이 사후에 판명됐다.
3월초 「레이건」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승용차수출 자율규제를 요청하지 않겠다고 밝힌데 대해 일본정부는 스스로 자율규제를 계속하겠다고 결정했다. 다만 규제한도를 종래의 연간 l백85만대에서 2백30만대로 24%를 늘린다는 것이었다.
이 조치에 대해 미의회에서는 『시장개방은 생각지도 않고 수출을 늘릴 것만 생각한다』고 호된 비판을 가했다.
미국의 대일 보복법안은 12개월 이내에 35억 달러의 대일 무역적자삭감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산출근거는 바로 승용차수출 24%증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인데도 일본국내에서는 한쪽으로 대미비판의 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회의 보복결의안이나 보복법안은 대일 「차별조치」이며 무역불균형의 원인은 미국 쪽이 책임을 져야할 달러강세에 있다는 논리다.
사태의 진전여하에 따라 이 문제는 자칫 일본국내의 정치문제로 번져 「나까소네」내각의 운명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입장에서 볼 때 미일무역전쟁은 조금도 반갑지 않은 일이다. 미일간의 분쟁이 보호무역주의로 치닫는다면 한국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대미무역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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