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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잡아줘” “2인룸 예약할까요?” 대화형 ‘챗봇’ 메신저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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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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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메신저 앱인 킥(Kik)은 지난주 화장품 회사 세포라, 의류 회사 H&M, 일기예보 회사 웨더채널 등 16개 회사가 참여한 봇숍(Bot Shop)을 열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에서 앱을 구매하듯 킥 메신저 내에서 봇을 선택해 두고 어떤 대화창에서든 원하는 봇 이름 앞에 ‘@’을 붙여 질문을 하면 그 회사의 챗봇(chat bot)이 등장해 답을 준다. 가령 “@weatherchannel 오늘 날씨가 어때?”하고 물으면 웨더채널이 대화 상대로 등장해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챗봇 기술에 뛰어든 건 킥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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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표·병원 예약부터 의류 쇼핑까지
앱 접속 없이도 ‘디지털 비서’ 역할

중국 ‘위챗’ 가장 먼저 플랫폼 도입
MS·구글·페북 잇따라 ‘챗봇’ 가세

독일의 텔레그램은 지난여름 봇 플랫폼을 발표했고, 네이버의 라인도 개발자들에게 챗봇 API를 곧 공개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은 12일부터 열릴 ‘F8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개발자들이 페이스북의 메신저를 기반으로 한 챗봇을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공개한다고 예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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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메신저 회사들이 속속 챗봇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챗봇이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인간의 대화를 흉내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용자가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사람과의 대화처럼 바꿔주는 기술이다. 그동안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 정도로만 여겨졌던 메신저 서비스가 이런 챗봇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어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챗봇을 제일 먼저 도입한 회사는 중국의 위챗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위챗 사용자들이 메시지를 통해 챗봇과 대화하며 호텔이나 병원 예약은 물론 영화표까지 구매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는 애초에 실제 직원이 직접 응답하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챗봇으로 빠르게 그 역할이 넘어가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위챗의 성공을 통해 메신저 서비스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재빨리 추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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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메신저 킥에 등장한 의류 회사 H&M의 챗봇. 이용자가 선호하는 스타일과 관심 있는 아이템을 보기 중에 고르거나 문자로 알려주면 그에 맞춰 상품을 추천하고 가격 등도 알려준다. IT 대기업들이 챗봇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제는 메신저 회사들뿐만 아니라 우버나 심지어 타코벨 같은 패스트푸드 회사들까지 직접 뛰어들어 메신저 플랫폼을 통해 고객과 대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미리 정해 놓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런 기술을 개발할 능력을 갖춘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같은 IT 대기업은 특정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회사나 사용할 수 있는 ‘봇 프레임워크(bot framework)’를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MS의 사티야 나델라 CEO는 지난달 ‘빌드(Build) 개발자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몇 년 내에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듯 사람과 (시리·코타나 같은) 디지털 비서, 사람과 챗봇, 심지어 디지털 비서와 챗봇이 대화하게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미래는 “인간과 기계가 경쟁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함께하는 세상”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의 보도에 따르면 IT 대기업들이 챗봇에 열광하는 이유는 인터넷 환경의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모바일 기기의 확산으로 인터넷의 중심이 웹(Web)에서 앱(app)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인 웹과 달리 모바일에서는 사용자들이 ‘벽이 둘러쳐진 정원(walled garden)’인 개개의 앱에서 떠나지 않는다.

문제는 사용자들은 몇 개의 앱 이상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앱을 내려받는 횟수도 줄어드는 등 앱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데 있다. 작은 회사들이 모바일을 이용한 서비스를 시작하기 힘든 환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령 타코벨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고객의 주문을 모바일로 받기 위해서는 앱을 보급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음식을 한 번 주문하기 위해 그 음식점의 앱을 깔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바일에서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메신저 플랫폼을 통해 주문을 받고 소비자와 얘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챗봇이 필수적이란 것이다. ‘웹의 시대가 가고, 지금이 앱의 시대라면 앞으로 올 큰 놈(next big thing)은 바로 봇’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웹과 모바일 모두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MS가 챗봇에 크게 베팅을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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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의 챗봇 ‘테이’는 공개 몇 시간 만에 막말을 배우고 쏟아내기 시작해 운영이 중단됐다.

물론 챗봇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얼마 전 MS의 실험용 챗봇 테이(Tay)의 막말 파문이다. ‘너를 생각하고 있어(thinking about you)’라는 표현의 머리글자로 만든 이름이 암시하듯 10대들을 겨냥해 내놓은 테이는 원래 트위터상에서 10대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대화법을 익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사용자 중 누군가 테이의 학습능력을 악용하는 방법을 찾아내 미국에서 금기시된 막말을 가르쳤다. 그 결과 공개 몇 시간 만에 테이는 “부시가 9·11테러를 일으켰다”거나 “지금 백악관에 있는 원숭이보다 차라리 히틀러가 나았을 거다” 같은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MS는 황급히 테이의 작동을 정지시켰지만 이런 챗봇이 현실 세계에서 접하게 될 어려움을 확인하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봇 시장의 성장 가능성만큼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챗봇의 최대 고객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지금의 10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단지 10대의 모바일 타이핑이 빨라서만이 아니다. 킥의 메시징 최고책임자인 마이크 로버츠는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빨리 배우고, 메신저상의 대화도 훨씬 재미있으며, 친구들에게 파급력이 다른 세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며 “머지않아 챗이 웹브라우저를 대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현 IT 미디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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