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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발" 닷새만에 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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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당대회에서 총재를 뽑고 재출발을 다짐한지 닷새만에 민한당이 내외의 압력에 못 이겨 백기를 들고 신민당에 흡수통합 됐다.
지난 4년 간 제1야당을 지탱하던 민한당이 2·12총선거 패배의 일견으로 4년76일만에 허무한 종언을 고한 셈이다.
총재당선 닷새만에, 법적 총재로는 하루만에(2일 중앙선거위에 당 대표 변경 등록) 3일 상오 민한당의 해체를 선언한 조윤형 총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합당 특별성명을 발표.
신민당과의 무조건 합당선언으로 백기를 들게된 조총재는 『낙선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동지들에게 통합에 따른 정치적 보장을 마련치 못한 무력을 통감한다』면서 『특히 제1야당의 당원 된 사명에 충실했던 일선당원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살리지 못해 가슴아프다』고 탄식.
조총재는 두 김씨의 재촉과 당선자의 이탈압력을 이번 결단의 이유라고 설명하면서 언행일치 해야한다는 뼈있는 한마디.
조총재가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는 전·현직의원 50여명을 비롯, 1백여 당원 등이 지켜 봤는데 고병현 의원(낙선)은 『대의원들의 결의를 무시한 채 체제도 안 갖추고 해체성명을 발표한 경위를 밝히라』고 고함을 치며 항의를 제기했고, 평당원들은 『당을 하나 만들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멋대로 해체를 하느냐』고 대드는 등 당사가 소란.
조총재는 이날 특별성명발표직전 조홍규 부대변인을 통해 미리 무조건 합당결의를 보도진에게 알렸는데 조총재 자신이 통합추진위의 위원장을 맡겠다고 함으로써 당초 이중재씨와의 약속은 약간 수정.
또 조총재로부터 성명발표 전 중진회담을 갖겠다는 전갈을 받고 당사에 나왔던 김준섭·오홍석·김승목씨 등은 사기극이라고 흥분.
유치송 전 총재는 조총재의 기자회견내용을 전해 듣고 아무 말도 없이 출타.
조윤형 총재는 특별성명을 발표한 직후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를 각각 자택으로 방문, 그간의 경과 및 앞으로의 방향 등을 논의.
김대중씨는 『중요한 결단을 잘 내렸다. 국민이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했고, 김영삼씨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줬다. 현행 정당법이 복잡해 당대당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개별탈당을 하도록 했으니 오해 말라』고 위로.
조총재가 김대중씨에게 『며칠 간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자 김씨는 『심려는 조총재가 했지』라며 『기자도 만날 필요 없이 계속 누워있으라』고 자제를 당부.
이때 이중재씨가 들어와 그간의 접촉 등 경과를 함께 설명.
또 김영삼씨는 조총재에게 『좀 쉰 뒤 만나자』고 했고, 조총재는 『여행을 다녀와 1주일 후쯤 뵙겠습니다』고 인사.
한편 두 김씨의 방문 후 K호텔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통합추진수권위 첫 회의에는 신상우씨와 박일씨가 불참했는데 이들을 기다리던 중 석간신문이 배달되자 모두들 신문을 정독하며 침통한 표정.
조총재는 신민당이 아직도 개별입당을 고집하고 있는 것과 관련, 추후대책에 대해 아직 생각을 안 해봤다면서 당초 성명대로 하겠다고 했다.
유한열·황낙주씨 등 민한당의 범주류파 11명은 3일 상오 하이야트 호텔에서 탈당성명을 마친 뒤 곧바로 신민당사로 찾아가 총재단회의를 끝낸 신민당지도부와 인사.
이들은 입당원서 제출에 앞서 이민우 총재를 만났는데 이총재는 이들에게 『오래간만이다. 잘 왔다』고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준비한 꽃다발을 전달.
이총재가 『더 올 사람이 있느냐. 조총재의 성명 의도가 무엇이냐』고 말하자, 황낙주씨는 『조총재는 총재가 된 뒤 소신을 세 번씩이나 바꿨다』면서 『더 올 사람이 있다』고 대답.
이어 황씨는 『신민당 입당이라는 국민들에 대한 공약을 이행했다는데 오늘의 결단의의가 있다』고 했으며, 이총재는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이 입당하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
이날 입당서류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유한열씨는 주소와 성명 등을 간략히 적는 등 입당서류를 즉석에서 쓴 뒤 이택돈 사무총장에게 전달.
2일 낮까지도 태도결정을 못하고 있던 범주류의 유한열씨는 3일 상오 H호텔에서 있은 범주류파 11명의 집단탈당에 합류.
유씨는 탈당동기에 대해『당대당의 통합을 추진하겠다던 조윤형 총재가 전당대회 이후 당선자대회는 물론 경합자였던 나에게조차 한번도 만나자는 연락도 않은 채 백기를 들어 60만 당원을 완전히 기만하고 있다』며 『따라서 조총재에게 우리의 장래를 맡길 수 없고 조총재는 백기를 든 책임을 당연히 져야한다』고 조총재의 일방적인 행동을 성토.
이들의 회동장 밖에는 김영삼씨 비서실장인 김덕용씨가 나타나 이들의 행동을 주시.
한편 범주류에 속해있던 손태곤 의원은 『나는 당을 만든 사람이므로 신민당에 가지 않겠다』며 『탈당을 해서라도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결연히 선언.
전당대회 이후 조속한 탈당과 신민당입당을 결행하려던 이중재·신상우씨 등 민한당의 수권위파 2O여명은 3일 상오 N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이날 상오9시30분 조윤형 총재가 밝힌 무조건 합당 선언에 따라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으나 개별이탈자가 생기는 등 엉거주춤. 이중재씨는 『총재가 원하는 당대당 통합을 위한 흡수합당의 절차를 밟는데 협력해 달라』며 『어제 조총재의 수권위구성안에 개인적으로 동의했다』고 설명. 그러나 신상우씨는『총재가 무조건 통합을 선언하게 된 비상사태에서 수권위구성은 번거롭고 우스운 절차』라며 『따라서 총재의 기자회견에는 배석해주되 원내·외 위원장의 임의탈당을 자유롭게 결행해야한다』고 주장.
신씨는 『신민당에서 당대당 통합을 일언반구 언급한 적도 없는 상황에서 원내와는 달리 원외의 경우 정상적인 절차를 기다리다 보면 고아가 돼버릴 위험이 있다』며 『원외는 액세서리냐』고 항의.
한편 이들과는 별도로 S호텔에 모여 있던 허경구·목요상·이영준 의원과 수권위파의 유준상·이재근 의원은 자파의 행동통일을 기다리지 않고 탈당을 선언.
조윤형 총재가 S호텔에서 참모진인 정대철·조홍규씨를 배석시킨 가운데 이중재씨를 만나 3일 상오 회견을 통해 민한당의 완전소멸을 밝히겠다고 결심한 것은 2일 하오4시쯤.
이씨는 『8일까지 통합시한을 앞당길 수 있느냐』며 수권위파안의 강경입장을 설명하자 조총재는 3일 회견을 통해 무조건 통합을 선언할 테니 수권위파의 탈당을 연기해달라고 요청.
이에 양자는 조씨가 회견에서 무조건 통합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대신 그 자리에서 이씨를 수권위원장으로 임명하면 이씨는 즉석에서 수권위원명단을 발표함과 동시에 회의를 열어 신민당에 흡수, 합병하는 형식의 당해체결의를 한다는 시나리오에 합의.
이어 상도동으로 감영삼씨를 방문한 이씨는 『당대당의 통합이 어렵다고 판단, 지금까지 탈당을 추진해왔으나 조총재가 3일 신민당과의 통합을 선언하겠다고 하니 그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김씨가 영향권 안의 민한당 인사들의 3일 탈당을 막아달라고 요청.
그러나 김씨는 『내가 민한당의원들에게 언제까지 하지 말라거나, 언제 탈당하라고 할 입장이 아니다』고 거절.
조총재가 1일하오 국회개원 전까지 통합방안을 내놓자 수권위파들은 2일 상오10시부터 본거지인 N호텔에 모여 이의 수락여부를 2시간 여 협의.
이중재·이진연·이용희·유준상·이재근·장기욱·김정길씨 등 수권위안에 서명했던 당선자 10명중 7명과 원외의 김진배·김창환·강보성·강원채씨 등이 참석했고, 조총재 측에서 김대중씨를 이날 아침 만나고 온 정대철씨가 참석.
이씨가 1일 김대중·조윤형씨와 만나 내용을 설명하고 특히 김씨가 조씨를 도와주라고 했다면서 조씨안의 수락여부를 중의에 부치자 이진연·유준상·이재근씨가 15일까지의 합당안이 시간만 잡아먹자는 것이 아니냐며 『만일 조총재가 백기를 들려고 하다면 오늘 중이나 내일 중 무조건 신민당입당을 선언토록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
이에 이씨가 정대철씨에게『15일까지는 너무 늦으니 8일까지로 통합시한을 대폭 앞당긴다면 조총재의 제의를 적극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했고 유준상씨는 『조총재가 그것을 각서로 써서 우리에게 넘기라』고 추가 주문.
그럼에도 이진연·이재근씨 등은 『8일까지의 탈당보류에 상도동 측이 동의치 않는다면 예정대로 3일 탈당을 결행한다』고 강경입장을 재천명.
한편 범주류인사들은 2일 낮 B음식점에 회동, 3일 탈당키로 하고 민한당 탈당계와 신민당 입당원을 즉석에서 써서 황낙주씨가 보관.
황낙주·박해충·정재원·황병우·목요상·조종익·서종렬·정상구·손태곤·신재휴·최운지씨 등 11명 중 손태곤·서종렬씨만 제외한 9명이 탈당, 입당계에 서명.
황낙주씨는 『우리는 이중재씨 측이 조총재 제의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관없이 3일 탈당할 것』이라며 『야당이 하나가 되는 것은 역사적 소명이며 우리는 이 과업에 앞장서겠다는 뜻뿐』이라고 모임성격을 설명.<이수근·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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