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 주도한 파나마 로펌, 국제적십자사 이름까지 도용

중앙일보

입력

 
 사상 최대의 조세 회피 스캔들인 ‘파나마 페이퍼스’의 불똥이 엉뚱하게 국제적십자사로 튀었다. 이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가 조세회피를 위해 수백만 달러의 자금 은닉을 하면서 국제적십자사를 비롯한 자선 기관들의 이름을 도용했다고 프랑스와 스위스 일간지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르몽드지와 스위스 르 마탱 디망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 측은 국제적십자가 외에도 ‘페이스(Faithㆍ신앙) 재단’과 같은 이름의 유령 재단을 만든 뒤 해외 500여개 회사의 도피 자금을 은닉했다고 한다. 이후 이 재단은 ‘적십자사’ 명의로 주기적으로 자금을 넘긴 것으로 나온다. 르몽드지는 “진짜 수령인을 감추면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비영리단체의 후광을 이용해 돈세탁을 하려는 이중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국제적십자사 등 관련 기관들이 이런 명의 도용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유출된 이메일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 측은 “최근 금융회사나 은행의 업무상 자금 수령자에 대한 경제적 정보를 밝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페이스 재단의 수령자들에 대한 명단과 정보를 적는 일이 불가피 하다”며 “우리는 적십자사같은 이름을 이용해서 수령자 명단을 만들어 냈다”고 썼다. 또 다른 이메일에는 “파나마에선 자금 수령자의 명의를 본인 모르게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일부러 적십자사가 이 사실을 전혀 모르도록 했다”는 내용도 있다.

 국제적십자사는 즉각 반발했다. 클레아 캐플런 대변인은 AP통신 기자에게 “이번 폭로는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이며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국제 분쟁 지역과 내전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일한다.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 적십자 마크와 이름 뿐이고 적십자의 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존경밖에 없다”며 “허락없이 적십자 이름이나 로고를 사용하는 것은 적십자요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이 페이스 재단의 자금을 역추적한 결과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네스터 키르히너와 부인 크리스티나 키르히너를 비롯한 여러 명의 거물들이 자금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고보도했다. 이 재단은 런던에서 부동산 단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페이스 재단 외에 파나마 소재의 또 다른 재단 하나도 전 모스크바 시장의 부인으로 러시아 부호로 알려진 엘레나 바투리나의 재산 은닉을 담당하고 있는 등 관련 재단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종문 기자 pers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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