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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쉰다고…손님 많은 주말 문 닫는 이세돌기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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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에 사는 김모(45)씨는 가족들과 지난달 26일 주말을 맞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관광을 갔다가 크게 실망했다.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약 1시간이나 달려간 이유는 이세돌바둑기념관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비금도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이세돌기념관 1층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유리 출입문에는 ‘주말은 쉽니다. 근무시간 평일 월~금 09:00~18:00’이라고 적힌 A4 용지 크기의 안내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허탈함을 느낀 김씨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김씨는 “서울에서 큰 마음먹고 비금도까지 갔는데 바둑기념관 문이 잠겨 있어 황당했다”며 “관람객이 적은 평일에 문을 닫고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운영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개관 8년째 어이없는 탁상행정
목포서 배로 한 시간, 비금도 명소
이세돌 고향 찾는 휴일 손님 헛걸음
“평일 휴관하고 토·일 문 열었으면”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33)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여 모처럼 전 국민적으로 바둑 붐이 조성되면서 이 9단의 고향인 신안군 비금도가 유명해졌지만 정작 신안군은 중요한 관광자원인 바둑기념관을 사장시키고 있다. 관광객들의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공무원들의 편의만 앞세워 주말에는 문을 닫는 폐쇄적 운영 행태 때문이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전남을 바둑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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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비금면 지당리 옛 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선 이세돌 바둑기념관. 신안군은 1년 전 건물의 상징인 바둑알 조형물(점선 안) 일부가 떨어지자 철거한 뒤 보수를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사진 신안군]

신안군이 2008년 12월 5억여원을 들여 옛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798㎥ 규모의 이세돌 바둑기념관은 이 9단의 고향집을 제외하고는 비금도의 유일한 바둑 관련 관광자원이다. 이 9단의 어린 시절 사진과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바둑판 등 가치 높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대국장과 숙박 공간도 갖추고 있다. 지난달 이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값진 1승을 거두자 바둑 열풍이 불면서 주말을 이용해 비금도의 이세돌 바둑기념관을 찾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광객은 실망만 하고 돌아가고 있다. 평일에 비해 훨씬 많은 관광객이 비금도를 찾는 토·일요일에는 정작 바둑기념관 문을 닫고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안군은 토·일요일에는 공무원들이 근무하지 않고 쉬는 날이라는 이유로 ‘평일에만 개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비금도에 거주 중인 바둑기념관 관리자를 별도로 뽑아놓고도 주말 운영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일부터는 평일인데도 기념관 문을 아예 걸어 잠갔다. 바둑기념관 관리자가 시설 소방 관련 교육을 위해 광주광역시에 일주일간 출장을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안군 주민 김모(55)씨는 “이 9단이 가져다준 절호의 지역 이미지 개선, 관광 수요 확대 기회를 공무원들이 탁상행정으로 걷어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9단의 바둑판 등 중요한 물품을 기증한 이 9단 가족들도 바둑기념관을 평일에만 운영하는 데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9단의 어머니 박양례(69)씨는 “관광객들을 위해 평일에 이틀을 휴관하고 토·일요일에 문을 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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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은 바둑기념관 시설 관리와 보존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래 기념관 앞쪽 외벽에는 바둑판과 바둑알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부착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지난해 봄 철제 바둑알 조형물 일부가 바람에 떨어지자 신안군이 “안전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아예 뜯어낸 뒤 보수공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세돌 바둑기념관 운영을 담당하는 신안군 양국진 천일염산업과장은 주민과 관광객들의 불만이 커지자 뒤늦게 “주말에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 보수 공사도 서두르겠다”고 해명했다.

신안=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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