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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과목 너무 많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실 요 근년에 아들이건 딸이건 대학 입학시험을 치러본 학부모라면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분명 『이건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왜 이런 입시제도가 생겨났을까?』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을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3년간을 마치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코를 꿰인 노예인 양, 주문이라도 외듯이 『대학입시, 대학입시』를 외치면서 『학력고사 몇 점, 학력고사 몇 점』이라는 아라비아 숫자에 매달려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읽고싶은 소설책 한 권 못 보고, 하고싶은 운동, 가고싶은 여행, 놀고싶은 때 실컷 한번 놀아보지도 못 하고, 꿈과 희망이라든지 이상이 무엇인지 그 뜻을 챙겨보기도 전에 그들은 점수만을 따야했던 것이다.
재작년 첫아들애가 고3이 되자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 밤 10시가 다 돼 집에 들어와서도 새벽1시까지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아들을 뒷바라지해야 했다.
그래도 아이는 새벽 5시면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서둘러야 했다. 그러기를 1주일, 수면부족으로 지쳐 낮에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머니 역할을 하겠느냐』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1년을 큰애와 함께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간 아들의 책상에 앉아 책꽂이를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교과서가 열댓 권, 거기에 딸린 참고서가 각 한 권, 문제집이 또 하나씩으로 3단 짜리 책꽂이가 꽉 차고도 모자랐다.
저토록 많은 과목을 다 대학입시에서 시험을 치른단 말인가. 『저 많은 것을 다 보기 위해 잠을 못 자고 고생하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후 알아보니 대입 학력고사에서 출제되는 과목은 16∼18개에 이른다고 한다. 꼭 그 많은 과목을 모두 시험으로 치러야만 할까.
입시과목을 줄여 아이들을 그 지옥에서 다소나마 해방시켜 주어야 하겠다. 과목을 줄이면 고교교육 정상화에 지장을 준다고 하지만 이는 거의 모든 과목을 치름으로써 생기는 보다 큰 교육적 폐해를 도외시한 생각이다.
꿈을 키우고 정서를 개발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학과공부만이 전부가 될 수 없다. 자연을 배우고 사회를 익힐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 여유를 그냥 노는 게 아닌 자기영역을 넓혀 가는 귀중한 시간으로 활용되도록 우리가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올해 또 둘째 딸아이가 고3이 됐다. 우리 집은 또다시 지독한 「고3병」을 앓아야 할 환자가 둘 생겼다.
나는 오늘 새벽 「소질이나 개성, 추억의 여고시절, 즐거운 나의 집」같은 단어 대신에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수학공식을 외는 딸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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