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비전 안 보이는 취업 여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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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의 여성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주는 통계가 나왔다. '여성의 취업'의 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02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7%. 남녀 응답자의 86.6%가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지만 겨우 여성의 절반이 일자리를 얻은 데 그쳤다.

조금 희망적인 지표라면 25~34세 여성들이 결혼.임신.출산.육아의 벽에 부닥쳐 노동시장을 떠나던 현상이 다소 완화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일생 동안 낳는 평균 자녀수가 1.3명으로 줄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숙제를 남기고 있다.

취업 여성들만이 출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한 명만 낳거나, 아이 낳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음이 통계의 행간에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면서 살아가는 여성의 길이 너무 고달프다는 얘기다. 이어지는 통계가 그녀들의 심정을 웅변하고 있다고 본다. 남녀의 경제활동 참가율부터 비교해보자.

대졸 남녀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90(89.5)대 62, 고졸은 78(78.2)대 51(51.4)이다. 30%에 이르는 엄청난 격차를 놓고 여성들은 취업 기회에서부터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말 이외의 다른 설득력 있는 해석이 가능한가?

노동시장의 지위를 보면 또 한번 한숨이 나온다. 남녀 취업자 중 상용노동자 비율은 37.8대 21.3, 임시.일용노동자는 26.5대 42.2다. 여성 취업자의 66%가 비정규 노동자다(참고로 노동계의 통계는 70.7%다).

남녀 취업자 모두가 직업 선택의 요인을 '안정성'이라고 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참으로 답답한 수치다. 여기에 고위직이라 할 수 있는 4급 이상의 여성 공무원이 2.4%, 임금근로자 중 과장급 이상의 여성 비율(노동부, 2001)이 3.1%라는 통계를 접하면 여성의 임금이 왜 남성의 64(63.9)%에 머무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극명해진다.

지금 한국의 취업 여성의 상당수는 어렵게 일터를 찾았으나 하위직 또는 안정성을 위협받는 비정규직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만이 문제인가? 육아부담(41.1%), 사회적 편견, 차별적 관행 및 제도(21.7%), 불평등한 근로조건 (13.2%)이 힘들다고 여성들은 꼽고 있다. 남성 응답자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면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육아부담만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고교에 이르는 자녀 양육에 대한 중압감도 있다(물론 사교육비 문제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또 하나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근로조건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쩔 것인가? 잠시 이웃으로 눈을 돌려보자. 최근 일본 경제산업성은 흥미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회사 직원 중 여성비율과 기업의 총자산이익의 관계를 분석한 '여성의 활약과 기업 실적' 보고서(일본 경제성 남녀 공동 참여위원회, 2003)다.

여성 비율을 10% 높일 경우 총자산이익률이 0.2% 상승하는 효과가 있더라는 분석이다. 인사관리에서 성차 없이 능력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며, 여성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여성 취업자 수를 늘리더라도 이익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처음 만나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명함을 교환한다. 무슨 일을 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나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서 갖는 명함의 유효성 때문일 것이다.

남성에게 명함이 중요하듯이 여성들도 자신의 능력과 생애주기에 걸맞은 사회적 인간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익이다. 그리고 그 토양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정강자 한국여성민우회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