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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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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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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영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부교수

최근 중국 아오란그룹의 임직원 6000명이 포상 여행의 일환으로 인천을 방문해 ‘치맥 파티’를 즐긴 것이 화제가 됐다. 이번 여행은 120억여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한다. 5월에는 중마이그룹 직원 8000여 명이 서울관광을 기획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인 유커(遊客)는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1억20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출한 금액은 약 220조원에 달한다. 해외 관광객 수 및 지출 규모 분야에서 3년 연속 세계 1위다.

유커는 경제 침체에 빠졌던 도쿄 긴자 등의 쇼핑지역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단 1주일 동안 프랑스 니스시에 245억여원의 관광수입을 안겨주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가 유커를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하지만 유커 유치와 관련한 우리의 관광산업 환경은 녹록지 않다. 올해 춘절(春節)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한 유커의 쇼핑 품목은 과거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서 중저가 화장품으로 바뀌면서 국내 면세점 지출액 규모가 전년에 비해 둔화하기 시작했다. 같은 기간 일본을 방문한 유커의 수 및 지출액 규모가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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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의 80% 정도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이었고, 이 중 한국을 다시 찾은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유커들의 일본 재방문율 80%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점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유커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사전에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실망감을 표출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고질적 병폐인 저가 관광상품 및 바가지 요금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유커들에 대한 잘못된 상거래 관행을 일소한다는 측면에서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착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부조리 관행 근절책만으로 유커의 지속적인 창출과 재방문을 유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부족하다. 필자는 중국인 유학생 10여 명의 도움을 받아 한국 관광에 대한 경험이 있은 중국인 30여 명에게서 한국 관광의 문제점과 개선책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국 관광에서 경험하는 부정적 감정과 불만족으로 야기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관광업계 종사자들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 양질의 통역사와 서비스 종사자의 품질 높은 접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국 문화와 역사, 유커들의 연령별 가치관 및 소비 패턴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커들과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전문 종사자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유커들이 높은 유대감과 신뢰를 느끼게 돼 적극적인 소비지출 및 한국 관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는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 요소다. 정부 차원에서 양질의 유커 관광전문가를 양성하고 배출할 수 있는 교육체계를 수립하고, 관광업계에는 유커 전문가를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인적자원 인프라 구축작업이 시급한 것이다. 유커들이 믿고 방문할 수 있는 주요 관광지라는 인증을 매길 때 얼마나 많은 유커 전문가들을 확보하고 있느냐를 높은 비중으로 평가에 반영하고, 우수한 인증을 받은 관광지를 유커들에게 적극 홍보하는 정책도 고려해볼 만하다.

둘째로 중국인들 사이에서 여행 패턴 및 쇼핑 가치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믿을 만한 인터넷 쇼핑 거래가 가능하게 됨에 따라 단순한 쇼핑 목적의 여행은 감소할 것이다. 대신 방문 국가의 고유한 전통 즉, 중국에는 없는 것을 경험하는 체험 위주의 개별여행이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쇼핑 위주의 단체관광 의존도를 서서히 줄여나가되 지역별로 차별적인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노력이 진행돼야만 지속가능한 유커 유치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셋째로 최근 중국 부자들 사이에서 쇼핑과 카지노 등 물질적인 욕구 충족 이외에 레저와 문화예술 활동 등을 통한 소비로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수요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에 VIP 유커들을 대상으로 전시회, 박물관 및 골프여행 등이 포함된 차별적인 VIP 맞춤형 관광상품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의 각종 규제 정책과 내수경제 활성화 정책, 소비 패턴 및 여행 가치의 변화 등으로 유커 유치의 양적 및 질적 성장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규모 인센티브 관광이 유커 유치의 새로운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상존하고 있다.

이번에 인천시가 보여준 대규모 포상여행을 유치하기 위한 관광자원 개발 및 인프라 구축 노력,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 효과는 다른 지자체와 관광업계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유커들의 원활한 환전 업무와 의료서비스 제공 등 관광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연관 산업 및 지원 산업의 긴밀한 협조체계가 함께한다면 추락한 한국 관광 이미지는 개선될 것이다. 유커 관광에 대한 미래 전망이 그렇게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안윤영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