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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화하는 시진핑의 중국에 대한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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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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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 링겐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시진핑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새로운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확신에 차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중국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인접한 국가들은 벌써부터 긴장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20년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황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멈출 줄 모르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평화의 시기를 향유했다. 여기에 자유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빌 클린턴은 “중국이 세계무대에 진출하면 할수록, 세계는 중국에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희망에 찬 전망을 한 바 있다.

이 시기는 기술관료들의 집단지도체제 시대였으며, 중국이 추구하는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제는 침체되고 있으며 인접 국가들과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정치적인 자유화는 점점 멀어져 가는 반면 국민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강도를 더하고 있다. 집단지도체제는 약화되고 그 자리에 일인지배체제의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고 있다.

어떠한 지도체제가 공산당과 국가를 지배하는가에 따라 중국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마오쩌둥의 절대권력 체제는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이라는 대혼란과 파괴를 초래했다. 중국이 경제개혁에 나서게 된 것은 덩샤오핑의 지도력 덕분이었다. 이 두 지도자는 모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선 같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지도자였다. 마오쩌둥의 이념적 지향은 중국을 파국으로 몰고 갔지만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은 중국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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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공산당의 총서기가 된 이래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왔다. 처음에는 중국 각지에 분산돼 있는 권한을 베이징으로, 다음에는 당에 집중시켰으며, 종국적으로 그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왔다. 최근에는 자신을 영웅처럼 포장하면서 스스로를 최고 영수로 격상시키며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시진핑은 이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당이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정통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동안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되었던 경제성장이 멈칫하자 점점 더 이념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시진핑은 공산당 간부들에게 마오쩌둥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일상의 업무에 반드시 이념적 활동을 포함시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회색의 기술관료적 지도자들이 경제적 전문성을 자랑했다면 새로운 지도자는 이념과 규율이라는 색깔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념은 매우 위험한 힘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념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일단 이념이 확실히 자리 잡게 되면 정치 지도자들은 스스로 만든 이념의 포로가 된다. 이념은 역사를 설명하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 이념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념이 신념체계가 되면 지도자든 국민이든 모두 그 이념의 신봉자로 전락하게 된다.

히틀러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주의는 이념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념적 진실을 신봉함으로써 가장 잔혹한 수단들도 정당화될 수 있다. 강력한 지도자가 이념을 이야기할 때 거기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시진핑의 이념은 마오주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가 지향하는 이념은 중국의 역사이며, 그중에서도 민족의 위대성이다. 중국의 위대한 전통을 한마디로 ‘중국의 꿈(中國夢)’이라 한다. 2012년 베이징 국립박물관의 ‘부흥의 길(復興之路)’이라는 특별전시 개막식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꿈이라는 슬로건을 처음 제시했다. 새로 출범하는 중국 공산당 상임위원회가 함께 참석한 이 행사에서 시진핑은 중국의 부흥을 “최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꿈”이라고 언급하면서, “어떻게 하면 각자가 자신의 미래 운명을 국가의 미래와 함께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전통에 배어 있는 힘과 영광을 민족주의라는 모습으로 부활시키려는 시진핑의 시도는 새로운 이념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념 속에서 국가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개인이나 사람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제 중국의 꿈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전부가 되었으며 누구나 거기에 충성을 다짐해야만 한다. 최근 전국인민회의에서 리커창 총리는 그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했으며, 중국 공영방송의 신년 갈라쇼에서는 더 공격적인 애국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념은 결코 순수하다고 볼 수 없다. 이념의 유혹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을 방출하게 된다. 이념에 경도된 일인지배체제 국가는 실용주의에 근거한 집단지도체제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족을 사람보다 우선하는 이념은 아주 위험하다. 강력한 국가기구와 야망과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를 갖고 있는 중국은 그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 지도자가 공격적인 이념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중국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스타인 링겐 옥스퍼드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