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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문화는 관리 영역이 아니라 놀이 마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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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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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장안에 소문난 맛집이 있다고 가정하자. 요리사는 수십 년 동안 자신만의 비법으로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은 그 맛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다. 그런데 요리를 전혀 모르는 지배인이 육수를 만드는 데 일부 양념을 빼고 다른 양념을 넣으라고 지시한다. 요리사는 지배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요리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부정되는 것도 이유다.

최근 문화계에서 제기되는 논란은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국립중앙박물관장 인사 파동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개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인들은 “부산시가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정한다면 참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영화인들은 2014년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이 상영된 이후 부산시와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한 것을 비판한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어 온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정치적·법적 압력을 넣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부산시는 “시비(市費)와 국비 지원으로 충당되는 영화제에서 협찬 중계료가 부정하게 사용되어 검찰에 고발했다”고 맞서고 있다.

‘다이빙 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와 집행위원회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행위원회는 영화 선정은 고유의 권한이므로 상영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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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는 장르 속성상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큐멘터리가 갖는 비판적 특성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불륜을 다루었기 때문에 멜로드라마를 방영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같다.

미국의 진보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을 통해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략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마이클 무어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기 위해 ‘화씨 911’을 제작했다고 공공연히 말했을 정도다. ‘화씨 911’은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화씨 911’은 칸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미국의 일부 극장들은 ‘화씨 911’을 상영하지 않았지만 어느 영화제에서도 조직위원회가 ‘화씨 911’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퇴임 사유를 밝혔다. 프랑스 장식미술전 개최를 반대하다가 청와대의 압력으로 물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장식미술전은 한국과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추진되었다. 파리 루브르 국립장식미술관과 샤넬·까르띠에·루이비통 등 프랑스 명품업체의 연합체인 콜베르 재단이 공동주최해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개최할 예정이었다.

김영나 전 관장은 프랑스 측이 장식미술전을 기획하면서 샤넬·까르띠에·루이비통 등 자국 명품들을 전시하고자 해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상업적인 부대행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장식미술전은 무산되었고, 정부는 그 책임을 물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와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인사 파동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정치와 문화 사이의 갈등을 보여 준다. 정치는 문화를 관리의 영역으로 바라보지만, 문화예술인은 자율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문화가 공통의 경험을 구성하고 사회통합의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문화예술인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일 때 문화의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중문화 이론가인 아도르노는 문화가 관리의 영역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문화가 관리되면 될수록 정신의 창조물로서 문화의 진정성이 위협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을 ‘미적 야만성’이라고 불렀다. 아도르노는 나치 시대를 살아 왔기 때문에 그의 우려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지금 문화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자율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정책으로서 관리의 문제를 배제할 수도 없다. 문화는 사회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화정책이 보여주는 관리의 범위다. 진정한 문화의 관리는 타율적 규제가 아니라 놀이의 마당을 펼쳐 주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문화라는 놀이의 마당에서 때로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창의적인 활동으로서 문화의 특성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융성은 문화의 특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지배인이 맛집 요리사에게 이런 양념을 사용해라, 저런 요리를 만들라고 지시한다면 음식의 맛은 사라질 것이고 손님들은 더 이상 먹는 즐거움을 잃어 버릴 것이다. 문화의 주체는 그것을 향유하는 대중이다. 대중이 즐기는 문화의 미각을 그 누구도 방해할 수는 없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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