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토인비」와 함석헌씨|"「고난」의 사관일치|한림대 노명식교수, 비교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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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의 역사학자「토인비」와 함석헌씨의 사관을 비교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노명직교수(한림대·서양사)가 최근「토인비와 함석헌의 고난사관비교연구」논문을 썼다. 이는 숭전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계획(한국기독교의 존재이유)의 일환이다.
노교수는 두 사람이 ▲삶과 인간과 역사의 본질을 고난으로 파악하고 ▲고난을 통한 정신적·도덕적 진보의 과정을 역사로 이해하고 ▲고난의 의미를 십자가의 의미로까지 승화시켜 실제 역사를 서술했다고 주장한다.
노교수는『이를 고난사관이라 이름할 때 역사를 고난의 입장에서 먼저 본 것도 함석헌씨고 그 고난의 의미가 시종일관한 것도 함씨』라고 말한다.
함씨의 고난사관은 삶의 절규인 반면「토인비」의 그것은 학문적 탐구과정에서 서서히 얻어진 결론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노교수의 비교연구 요지.

<두 인물 비교 가능한가>
두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은 일면 어처구니없는 일로 보일 것이다.
「토인비」(1889∼1975년)는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황금기인 빅토리아시대 영국 중산계급출신으로 세계의 명문 옥스퍼드대를 졸업, 30세에 벌써 런던대 교수가 됐다.
이에 비해 함석헌씨는 국운이 기울어 가는 1901년 한국의 서북 변경에서 넉넉지 못한 시골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0살 되는 해 망국의 통곡소리를 들었고 평양고보 재학 중 10대의나이에 3·1운동에 연루돼 퇴학당하고 헤매다가 정주 오산학교에서 중등교육 과정을 마쳤다. 일본 동경 고등사범학교에서 4년간 수학하고 돌아와 오산의 모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전자는 팍스 브리태니커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거침없이 걸어가는 역사가, 후자는 일제 경찰의 감시의 눈을 피해가며 언제 잡혀갈 지 알 수 없는 가련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한숨과 좌절 속에 나날을 보내는 이름 없는 시골중학교의 역사교사.
두 사람은 각각 자기시대의 지배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독특한 역사관을 품게되는데 그 역사관에 의한 대표작, 즉「토인비」의『역사의 연구』(10권)와 함씨의『뜻으로 본 한국역사』『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의 탄생경위와 운명 역시 두 저자의 생애만큼이나대조적이다.
그들은 사상적으로 아무런 교섭도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역사를 보는 위치와 시각은 놀랄 만큼 거의 일치한다. 그 일치의 가장깊은 곳이 인생과 역사의 본질을 고난으로 파악하는 점이다.

<함석헌의 고난사관|함석헌 "30년대 치욕 극복해야 한민족은 고난을이겨>
함씨는 한국역사의 기조를 고난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1930년대 그는 절망의 탄식소리에 섞여 들러오는 희미한 소리-고난의 역사에도 의미가 있다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세계역사 전체가, 인류의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역사의 고난의 의미가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됐다.
고난이 자학에 머물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고난은 이기는 자에게는 옥을 닦는 돌 같으나 거기에 져버리는 놈에게는 망하게 하는 재난이다.』
한국의 역사가 그 고난의 치욕을 영광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끝내 고난의 역사로밖에 되지 못한 까닭은 그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져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찾으려 하지 않은데 있었다고 함씨는 보는 것이다.

<비교>
「토인비」의 사관은 본시 문명사관이다. 문명을 단위로 해서만 역사의 이해가 가능하다.
문명을 국가보다 더 영속적인 단위로 취급했다. 「토인비」의 역사서술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데서 출발하는데 이점은 함씨도 같다.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은 함씨의 고난과 극복에 거의 일치하는 개념이다. 「토인비」는 종교가 문명이라는 나비와 나비 사이를 이어주는 번데기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후『역사의 연구』 7∼10권에서 종교와 문명의관계를 뒤집는다. 종교는 문명의 번데기가 아니라 반대로 문명이 고등종교를 낳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제 역사의 주인공은 종교다.
역사와 종교의 관계에 관해「토인비」가 그 나이 60대에 깨달은 것을 함씨는 30대에 얘기하고 있으니 놀라운 바가 있다.
「토인비」의 역사철학의 근본정신이「지혜는 고난에서 배운다」라는 것이라면 함씨의그것은「고난에 의해 사랑을 배운다」가 아닐까. 근본정신은 완전히 일치하나 고난의 의미를찾는데「토인비」는 희랍적인 지식에서 출발하고 함씨는 기독교적인 신앙에서 출발한 셈이다. 함씨는 끝끝내 신앙의 자리를 고수하고「토인비」는 점점 신앙 쪽으로 접근해간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종교적 고난사관에서 신기할 정도로 맞닿고 있다. 고난의 극복을 통한 정신적 진보의 과정을 역사의 본질로 파악한 것이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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