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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인터넷 관리 고삐 조이는 중국…한류 사업은 안전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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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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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

지난달 중국 공안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송중기 상사병’ 주의보를 내렸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남자 주인공의 인기가 너무 높아 부부싸움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다. 공안에서 별일을 다 한다 싶지만 웃고만 넘어갈 일은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 진입해 여론을 관리하려는 중국 당국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엿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는 우리 업체로선 예의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얼마 전 중국에 주재하는 미국·독일·캐나다·일본 등 서방 4개국 대사가 연명으로 중국의 반(反)테러 3개 법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서한을 중국 정부에 보냈다. 대사들이 단체행동을 한다는 건 이례적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반테러법 등에 ‘중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IT 기업은 데이터 접속과 암호 해독 정보를 중국 공안에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식재산권이 침해를 당하고 사용자의 사생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그러나 대사들의 항의가 효과를 볼 것 같진 않다. 중국 당국이 물러설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여론 장악 나선 중국
‘송중기 상사병’ 주의보 내리고
외자기업 인터넷 사업도 규제

위에는 정책, 아래엔 대책 있듯
중국이 터부시하는 내용 피하면
한류의 중국 진출 기회는 많아

중국 정부의 인터넷 공간 통제가 서방 국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지난달 10일 중국은 외국계 합자회사의 중국 내 인터넷 콘텐트 서비스 사업을 금지하는 ‘인터넷 출판서비스 관리규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규정에 따르면 외자기업은 더 이상 중국에서 인터넷 서비스 사업을 하지 못한다. 중국 인터넷 동영상 업체와 손잡고 중국에서 웹 드라마 제작사를 만들어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던 한 국내 업체의 계획도 무산될 운명이다.

이제 우리 영화나 드라마 등 한류 콘텐트를 중국 안에서 제작·판매·유통하기 위해 우리 기업이 중국 업체와 합자 형식을 취할 수는 없게 됐다. 한류 사업은 벽에 부닥친 것일까. 물론 한국에서 제작된 콘텐트가 중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인터넷 콘텐트 서비스 업체를 통하면 판권 수출 형태로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는 있다. 그러나 향후 규제가 콘텐트 제작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제 중국 정부의 인터넷 관리를 모르고선 중국 내 한류 사업 운운할 수 없는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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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처음 중국에 소개됐을 때 많은 이가 그 공간을 해방구로 인식했다. 시민의 언론자유가 확대되고 또 집단적인 움직임도 활발해져 중국 공산당 일당 치하의 중국에 민주화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중국 당국도 초기엔 정보화를 새로운 경제 영역으로 여겼지 정치적 저항의 장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인터넷이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두 사건이 발생했다. 1998년 6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맞춰 중국 공산당의 일당 집권에 도전하는, 즉 중국 최초의 야당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른바 ‘중국 민주당’ 창당 사건이다. 중국 민주당은 해외 각국에 웹사이트를 구축한 뒤 미국에 기반을 둔 ‘VIP 레퍼런스’라는 뉴스레터를 통해 수천 명의 중국 본토인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는 중국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정치 조직화를 시험한 대표적 케이스였다.

또 99년 4월엔 1만여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이 중국 고위 지도자들의 근무지이자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를 둘러싸고 시위를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 공안이 깜짝 놀란 건 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위자들은 당시로선 선진적인 기술인 인터넷과 팩스 등으로 연락을 취했다.

이처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도전에 당황한 중국 정부는 대응책으로서 ‘인터넷 만리장성(Great Firewall)’을 구축하는 ‘황금방패(金盾)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인터넷 콘텐트를 감시·통제·필터링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스템을 포괄한다. 사이버 경찰만 3만, 인터넷 관리 인원이 30만 명에 달한다는 후문이다. 문제 콘텐트 단속은 음란 콘텐트 퇴치 명분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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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국의 인터넷 공간은 시민의 ‘온라인 활동’과 당국의 ‘온라인 통제’가 힘을 겨루는 경쟁의 장으로 바뀌었다. 네티즌이 사회 비리를 고발하거나 정치 풍자를 통해 저항하면 당국은 관련자를 색출해 처벌하거나 계정을 폐쇄하는 방법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건당 우마오(5毛, 약 85원)를 받고 친정부 댓글을 다는 ‘우마오당(五毛黨)’과 반정부 세력으로부터 50달러를 받고 반정부 댓글을 올린다는 ‘50달러당’ 간의 싸움이 있기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의 상황은 어떤가. 서방 대사들의 연명 항의에서 보이듯 중국의 인터넷 공간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시진핑이 대권을 잡기 직전인 2011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해 2월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재스민 혁명을 벌이자’는 글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졌다. 이는 2010년 말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전개된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아랍의 봄’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여름에 발생한 원저우(溫州) 고속철 사고 때는 중국 네티즌이 정부가 구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잔해를 서둘러 묻는 장면을 웨이보를 통해 파헤쳤고 이어 광둥(廣東)성 우칸(烏坎)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시위 현장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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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인터넷을 통해 서구 풍조 및 사상이 유입되고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비판 경향이 강해지면 중국식 민주가 위협을 받는다고 믿는다. 시진핑 정권이 인터넷 관리를 강화하는 배경이다. 시진핑이 총서기가 된 직후인 2012년 12월 중국 당국은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는 새 규정인 ‘인터넷 정보보호 강화 결정’을 통과시켰다. 또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2013년 여름부터 단속에 나서 무려 274개의 웹사이트를 폐쇄하고 그 운영자를 처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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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려는 시진핑의 야심은 2014년 2월 ‘당 중앙 인터넷 안전 및 정보화 영도소조’를 신설한 데서 잘 드러난다. 소조 조장을 시진핑이 직접 맡았고 부조장에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당 서열 5위로 선전과 이념을 담당하는 류윈산(劉云山)이 임명됐다. 시진핑은 “인터넷 안전 없이 국가 안전은 없으며 정보화 없이 현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신문 등 전통 미디어는 물론 웨이보와 웨이신(微信, 중국판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반발도 있다. 얼마 전 발생한 중국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强)의 웨이보 계정 폐쇄는 매우 상징적이다. 런즈창은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알려진 류허(劉鶴)와 막역한 관계로 알려진다. 부동산 업계의 큰손으로 2010년엔 중국 ‘연봉왕’ 자리에 올랐다. 문제는 ‘중국의 도널드 트럼프’라 불릴 정도로 거침없는 그의 발언이다. 별명이 ‘런다파오(任大砲)’로 인기가 좋아 웨이보에서 거느리고 있는 팔로어만 3700만 명에 달한다. 그런 그가 시진핑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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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인민일보사와 신화통신사, 중앙텔레비전 등 중국의 3대 매체를 방문한 뒤인 2월 19일 인민대회당에서 좌담회를 갖고 “당과 정부가 주관하는 미디어는 당과 정부의 선전 진지로서 그 성(姓)이 당(黨)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런즈창이 웨이보에 글을 올려 “인민정부가 언제 당정부로 바뀌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모든 매체가 성(姓)을 가지게 됐는데 그러면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으면 인민에게 곧 잊힐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진핑을 향해 앞다퉈 충성 맹세 경쟁을 벌인 언론을 비아냥거린 것이다. 갈수록 담대해지는 중국 네티즌의 행보를 짐작하게 한다.

중국 정부가 인터넷 공간의 모든 걸 통제하는 건 아니다. 금지된 이슈가 있는가 하면 허용되는 사안도 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통제 영역은 중국의 정치체제와 공산당 일당제에 도전하거나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부추기는 이슈, 그리고 중앙 고위급 지도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경우 등이다. 반면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법당국의 불공정에 항의하거나 지방 간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폭로, 또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부 정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 등은 허용된다.

중국 당국이 터부시하는 일부 내용만 조심하면 중국 시장 진출이 힘든 것만은 아니다. 중국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있다. 우리가 중국의 인터넷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 공부하면 대책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중국 사업은 결국 우리 하기 나름이다.

이민자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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